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진흥기업의 채권단이 모그룹인 효성에 1000억원 이상의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것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우리은행 등 채권단은 진흥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효성 측의 1000억원 이상 증자를 조건으로 출자전환을 검토하고 있다. 반면 효성은 진흥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또다시 투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채권단 "先증자 後출자전환"

채권단은 진흥기업의 재무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효성그룹의 대규모 증자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15일 "건설경기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진흥기업의 자본잠식이 불가피해졌다"며 "효성이 최소 1000억원 정도 투입해야 진흥기업이 정상 궤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흥기업은 지난 5월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전체 채무액이 1조원에 달해 이자를 갚기도 벅찬 상황이다. 공사 미수금 역시 지나치게 많다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총 4372억원에 달한다. 이 중 1년 초과인 '악성'으로 분류된 것이 전체의 75.3%인 3290억원이다.

이에 따라 올 들어 3분기까지 진흥기업은 매출 3342억원에 순손실 1259억원을 기록했다. 손실폭이 작년 같은 기간(541억원)보다 두 배 이상으로 커졌다. 채권단은 4분기 실적까지 나오면 진흥기업이 자본잠식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권단은 효성의 증자 시기에 맞춰 기존 대출금을 주식으로 전환해 진흥기업의 부채율을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진흥기업이 회생하기 위해선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며 "효성이 증자하는 것과 동시에 채권단은 출자전환을 포함해 다양한 회생계획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진흥기업 채권회사가 65곳으로 적지 않은데다 이 가운데 60% 정도는 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이어서 돌출 변수가 나올 수 있다.

◆효성 "검토한 적 없다"

이에 대해 효성 측은 "채권단에서 증자와 관련된 어떤 요구도 한 적이 없다"며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진흥기업에 증자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2008년 1월 시공능력 평가순위 45위인 진흥기업을 인수한 뒤 자금지원을 했지만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는 설명이다.

효성은 2009년 4월 1400억원,작년 7월 1600억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진흥기업에 모두 3000억원을 증자했다. 지난 5월엔 채권단과 워크아웃을 체결하면서 진흥기업 보유지분(54.5%)을 전량 담보로 내놓고 9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채권단 역시 진흥기업에 900억원을 제공,진흥기업이 1800억원의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효성그룹이 진흥기업에 대해 증자를 실시하면 대기업 '꼬리 살리기'의 첫 사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금융권에선 작년 말부터 건설사 여러 곳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자 대기업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LIG건설이 올 3월 은행권과 사전협의 없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부터 은행들은 '대기업 특별심사'를 해왔다. 지난 7월엔 대기업 계열사라도 여신심사 및 구조조정 과정에서 우대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기업여신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효성 역시 지난 2월 진흥기업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으면서 도마 위에 올랐었다.

금융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공동 대응에 나선 이후 대기업들이 부실 계열사를 함부로 정리하기 어려워진 분위기가 생겼다"며 "효성이 진흥기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채권단의 여신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