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내년도 예산안 편성기준을 바꿨으면서도 이 사실을 슬며시 숨겼다. 박원순 시장 공약 달성을 위한 의도적인 통계기준 변경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는 지난 10일 예산안 브리핑에서 "박 시장의 공약인 '임기 중 복지예산 30% 목표 달성'을 위해 내년도 복지예산 비중을 올해 24%에서 26%로 늘렸다"고 발표했다. 시에 따르면 내년도 전체 순계예산(실질규모예산) 19조8920억원 중 복지 예산은 5조1646억원이다. 올해 순계예산(18조9946억원) 대비 복지예산(4조5601억원) 비중인 24%에서 2%포인트 늘렸다는 게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올해까지 복지 등 각 사업부문의 예산 비중을 낼 때 순계예산이 아니라 순수사업비 기준으로 비교해 왔다. 순수사업비는 순계예산에서 부채상환 및 행정운영경비 등 고정비를 제외한 금액으로,정책사업에 들어가는 순수비용을 뜻한다.

각 분야 추진사업이 전체 예산에서 얼마를 차지하는지 파악하려면 순수사업비로 비교하는 방식이 맞다는 게 그간 서울시 입장이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올해 순수사업비(15조7849억원) 중 복지예산(4조5601억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8.9%에 이른다.

그러나 시는 내년도 예산안에선 기존 방식인 순수사업비가 아니라 순계예산 대비로 기준을 변경해 복지 예산 비중을 발표했다. 이 기준으로 하면 올 복지 예산 비중은 기존 28.9%에서 24%로 줄어든다. 실 예산은 똑같지만 기준이 달라지면서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서울시가 전임 시장의 복지 예산 비중을 의도적으로 낮추고자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시장은 선거 기간 내내 오세훈 전 시장이 전시 · 토건성 사업에만 치중한 채 복지 분야를 등한시하면서 복지예산 비중이 20% 초반에 불과하다고 지적해 왔다. 이와 함께 그는 "임기 중 복지예산 30%를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오 전 시장의 복지예산을 순계예산 방식으로 하면 28.9%에 달하고,이렇게 되면 박 시장의 '임기 중 30% 복지예산 달성' 공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는 지적이다.

시가 통계기준 변경을 숨긴 것도 이 같은 지적에 설득력을 더한다. 시가 배포한 예산안 자료엔 통계기준 변경에 대한 얘기가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다. 기준이 바뀌었는데도 어물쩍 넘어가려고 한 셈이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