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국 경제에 드리운 '압축실패' 그림자
우리는 한강의 기적으로 상징되는 '압축성장'을 일궈냈다. 압축성장은 한국을 '8대 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인구 500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인 국가는 한국을 제외하고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이 전부다.

압축 성장은 '박정희 모델'로 등치되며 '개발독재,관치경제'란 비판적 꼬리표가 붙는다. 하지만 개발독재가 모든 개발도상국에 고도성장을 가져다준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꼬리표'는 역설적으로 우리 고유의 '성공방정식'이었다. 꼬리표가 압축 성장을 폄훼하는 논거는 될 수 없다.

개발연대는 시장규율의 작동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사치인 '시장부재'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지향적 경제주체인 기업을 창출해 최소한 시장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정부는 기업을 육성함에 있어 '지원과 실적'의 엄격한 교환을 통해 무임승차를 배제하고 기업 간 경쟁을 촉진했다. 그 결과 시장이 확대됐고 국민의 '자조의지'가 고취됐다. 압축성장은 관 주도의 '전략적 자원동원'에 의해 추동됐지만 그 기저에는 '경제원칙 존중,시장중시,성장친화적 리더십'이 있었다. 경제성장의 '유인과 동기,그리고 제도'가 존중되고 갖춰졌기에 압축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축성보다 수성이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2만달러의 덫에 갇힌 지 오래다. 대외적 경제환경이 불리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성장을 뒷받침해온 소프트웨어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경제의 기본원칙'이 비틀리고 있다. 고용과 복지를 통해 성장을 꾀하겠다는 정치논리가 보편화됐다. "마차로 말을 끌겠다"는 것이다. 집권을 노리는 야당은 그렇다 치더라도,미래를 책임져야 할 여당도 다를 바 없다. 그들은 복지와 고용을 향한 속도경쟁에 함몰돼 있다. 일감 확대가 관건이지만 일감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기업의 몫으로 치부하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을 경계해야 하겠지만 고용과 복지로 투자와 성장을 이끌 수는 없다. 정부지출을 통해 창출된 일자리가 양질일 수 없기 때문이다. 성장이 종속변수로 추락하고 반기업 · 반시장 정서가 팽배해서는 성장도 고용도 정체된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시장을 질식시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6년 참여정부 때 폐지됐던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사실상 부활시킨 '적합업종제도'다. 정책기조 전환이 타당하려면 그 같은 변화를 뒷받침할 만한 논거가 있어야 한다. 분명한 증거 없이 친서민,공정사회,동반성장의 화두가 그 자리를 메웠다.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는 '정언적 명분'이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중소기업을 겹겹이 보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랬다면 고유업종제도가 시행된 27년 동안(1979~2006)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획기적으로 개선됐어야 한다. '경쟁'이 아닌 '경쟁자'를 보호하는 정책으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다.

성장친화적 리더십의 실종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좌파지식인들은 이제는 "국가가 국민을 섬겨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따듯한 빵'을 가장 인간적으로 주겠단다. 그러나 따듯한 빵은 이내 식게 마련이다. 자조의지를 허물고 국가에의 의존을 타성화시키는 것만큼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것은 없다. '리스크'를 국가 등 타인에게 전가하기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 즉 '빵을 만드는 기술'을 전수해 줘야 한다. '시장 소득'의 부족을 복지예산으로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은 상존한다. 오늘의 번영을 가져오게 한 '성장의 유인과 동기,그리고 제도'가 허물어진다면 '압축실패'가 엄습할 수도 있다. 포퓰리즘의 그림자는 소리없이 성공의 문턱을 넘게 돼 있다. 국민적 대각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다.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 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