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내년 예산안을 확정해 시의회에 제출했다. 박 시장이 지난 10 · 26 보궐선거 캠프에 몸담았던 교수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의 자문을 거쳐 만든 이른바 '협치' 예산안이다. 전체 규모는 21조7973억원으로 올해보다 5.9% 늘어 3년 만의 증액으로 드러났다. 특히 복지예산은 5조1646억원으로 13.3%나 증가했다. 지방 소득세, 취득세 등 시세 수입 예상 증가율 7.5%의 1.7배를 넘는 금액이다. 쓸 일이 많아지니 예산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지출 증가로 부채 부담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SH공사, 서울 메트로 등 산하기관을 합친 부채총액은 올해 20조233억원에서 내년에는 19조9064억원으로 불과 1169억원 줄어드는 것으로 계획됐다.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하던 한강예술섬, 서해뱃길 같은 기존 사업과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강변북로 성산대교~반포대교 구간 확장 등 대형 신규사업을 모두 보류했는데도 이 정도밖에 안된다.

문제는 서울시 부채다. 박 시장은 2014년까지 3년 내에 부채를 7조원 줄이겠다고 했던 공약을 어제 예산안에서도 되풀이 강조했다. 2013년에 2조2000억원, 2014년엔 4조7000억원을 각각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13조원 넘는 부채를 지고 있는 SH공사가 짧은 기간에 7조원 가까운 빚을 갚는 것을 전제로 한 계획이다. 그것도 마곡지구 부지 매각, 아파트 분양대금 회수 등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부동산 거품이 다시 형성되지 않고는 불가능에 가깝다.

서울시는 앞으로도 지출할 곳이 널려 있다. 최저 생활기준선 도입에 따른 자금 지원, 2500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공임대주택 8만호 건설 같은 박 시장의 공약을 이행하는 데만 8000억원 이상이 들어갈 전망이다. 학자금 이자도 대납해야 하고 등록금도 반으로 낮춰야 한다. 마술사가 장미꽃을 피워내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박 시장은 벌써 기업들에 합계 1500억원의 협찬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예산에 아직 걷지도 않은 기업 협찬금이 포함되는 희한한 일이 서울시에서 벌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