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꿀벌의 우화'에서 배워라
300년 전 네덜란드 출신 철학자이자 의사인 버나드 D 맨더빌은 《꿀벌의 우화》라는 저서를 출간해 일약 유명인이 됐다. 이 글은 '개인의 악덕이 사회 전체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논조로 금욕과 절제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던 당시 유럽의 지식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우화 형식으로 된 이 책의 골자는 '사치와 탐욕과 이기심이 지배하던 꿀벌의 왕국에는 늘 일자리가 넘쳐 났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은 꿀벌들이 사치와 탐욕 대신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자리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넘쳐나 결국 망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열정과 비전(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가들이 넘쳐나고 부자들이 과시적 소비를 하는 사회일수록 지속적으로 성장 · 발전할 수 있지만,경제가 죽어 소비가 줄어들면 사회가 망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 메시지는 시장을 중시하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에 영향을 미쳐 국부론의 핵심 명제로 등장했다. 또 정부의 개입을 통한 유효수요 창출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존 메이나드 케인스의 경제학 이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맨더빌은 시장과 정부로 대비되는 양대 경제이론의 창시자인 스미스와 케인스의 스승인 셈이다. 하지만 개인의 탐욕이 결국은 유효수요를 창출했다는 점에서 정부 개입보다 시장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켰다고 볼 수 있다.

요즘 정치권이 성장을 뒷전으로 한 채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적 복지에만 목 매는 양상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복지타령이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얼마 전 복지와 고용을 연계한 복지 청사진을 내놓았다. 하지만 복지형 일자리를 뜯어보면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금방 안다. 엊그제 통계청은 10월 말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50만1000명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이 중 30만개는 50대,19만2000개는 60대 몫이었다.

20대 일자리는 제자리 걸음이고,30대는 오히려 6만6000개 줄었다. 인구구조상 청년층이 줄어들고 베이비붐 세대 인구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5060에 일자리가 집중된 것은 사실이다. 저임금을 거부하기 힘든 고령자층에서 단순노무직이나 사회서비스 분야에 취업했다는 얘기다.

정부부처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안해 내는 복지형 일자리들이 이런 저임금의 일자리들이다. 이 중 많은 일자리들이 선진국에서 시행되는 정책들을 베껴온 것들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는 고용전략회의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정책담당자들 입장에선 외국제도들을 벤치마킹할 수밖에 없다. 그 정책이 좋든 나쁘든.

오죽하면 우리 정부에서 연간 100개가 넘는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낼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한 번도 일자리 걱정을 안 해본 엘리트들이 (일자리를) 만드는 것 같다"고 질타한 것도 영양가 없는 일자리대책을 쏟아낸 데 대한 지적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반듯한 일자리를 만드는 게 시급하다. 하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과 정부에서조차 복지형 일자리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정부가 개인의 이기심(기업가 정신)을 묵살하고 그동안 벌어놓은 자산을 배분하는 데에만 신경쓴다면 결국 시장과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지 않아 '꿀벌의 왕국' 같은 길을 밟을 수도 있다.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한 때다.

윤기설 좋은일터연구소장·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