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택선 교수의 생생 경제] (14) 부유稅와 래퍼 커브
한동안 이른바 '부자 감세'가 문제가 되더니 이젠 '부자 증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버핏세 혹은 부유세라고 일컬어지는 부자 증세의 핵심은 소득세 최고 구간을 신설하고 여기에 증권소득 등을 합산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당장 격렬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으며,논란의 한 축으로 래퍼 커브(Laffer Curve · 래퍼 곡선)도 등장했다. 래퍼 커브의 논리에 따르면 세율을 올린다고 반드시 세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자 증세의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래퍼 커브의 이론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세율이 0%면 정부의 조세수입은 없다. 또 세율이 100%면 누구도 일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소득이 없을 것이고 따라서 조세수입 역시 없다. 이런 양극단을 생각하면 세수가 가장 커지는 세율(tx)은 0%와 100%의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 이를 x(세율)-y(세수) 평면에 그래프로 그리면 0과 100에서 x축과 만나면서 사발을 엎어놓은 것과 같은 모양의 곡선을 만들 수 있다. 이게 래퍼 커브다. tx보다 세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세율을 올리면 세수가 늘어나겠지만,반대로 tx보다 높은 세율의 구간에서는 오히려 세율을 낮춤으로써 세수를 증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래퍼 커브는 일찍이 레이거노믹스로 일컬어지던 공급중시 경제학의 중요한 이론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공급중시 경제학이란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에 대한 여러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거시경제적 논리를 말한다. 레이건이 1980년 미국의 대통령이 되면서 이런 논리적 근거에 따라 획기적인 조세감면 정책을 들고 나왔고,조세감면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래퍼 커브가 제시됐던 것이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 정책만으로 래퍼 커브가 맞는 논리였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시 미국은 감세와 함께 정부지출을 통제해야 했지만 이에 실패하면서 엄청난 재정적자를 겪었기 때문에 감세가 세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래퍼 커브가 갖는 가장 큰 문제는 세수를 극대화하는 세율이 얼마인가,또 한 나라의 경제가 래퍼 커브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하는 점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연구자에 따라서 tx가 30%에서 70%까지 이른다는 다양한 견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늘 우리나라의 상황에 비춰볼 때 더 큰 문제는 래퍼 커브 자체를 둘러싼 논란보다는 조세와 관련된 정책이 경제적 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에 좌우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조세정책의 하나로 부유세의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진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할 시점이다.

노택선 < 한국외국어대 경제학 교수 tsroh@hufs.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