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20여명의 '희망서울 정책자문단'(가칭)을 구성해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 편성을 비롯해 주요 서울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이들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키로 했다고 한다. 박 시장이 당선되자마자 별도의 준비기간 없이 바로 시장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사정상 전문가 집단의 자문을 받는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문제는 정책자문단이 말 그대로 자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앞으로 서울시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 있다. 박 시장은 정책자문단이 서울시 예산 편성에 직접 개입케 하는 것은 물론 차후에 이를 확대 개편해 서울시 중기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도 관여케 한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실제 박 시장은 정책자문단에 서울시 공무원과 시의원까지 포함, 50명 정도로 '공동정부운영협의회'를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자문단, 공무원, 의원 등 3자 연석회의에서 주요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소위 협치(協治)를 하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박 시장이 밝힌 협치란 법에도 없는 생소하고도 이상한 개념이다. 서울시장이 시정 최고책임자라지만 시장의 권한도 어디까지나 관련법이 정한 범위에 국한된 것이다. 서울시에는 의회도 있고 엄연히 행정과 입법은 분리돼 있다. 그런데 박 시장이 마치 새로운 통치제도를 도입하기라도 하려는 듯 협치를 운운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장이 됐다고 해서 시의 정책결정 과정과 방식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어떤 근거로 박 시장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박 시장이 마치 중앙 정치무대에서 대통령이라도 된듯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책자문단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흉내낸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자문단은 자문에 그쳐야지 이들이 서울시 예산을 설계한다는 것은 법적인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된다. 이는 의회주의를 무시하는 처사요 지방자치 행정 원리에도 어긋난다. 서울시민들은 시장을 뽑았지 무슨 인민위원장을 뽑은 것이 아니다. 요즘 서울시 공무원들은 박 시장의 동선을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트위터 팔로어들이 먼저 박 시장의 행적을 아는 상황도 발생하는 모양이다. 선거는 이미 끝났다. 이제는 차분히 서울시정을 챙겨야 할 때다. 아이디어 차원의 언행을 남발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