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제약업계 의견 수렴 새 개편안 마련…내년 1월 시행
약값 평균 14% 인하…절감액 연 2조9천억→2조5천억원
보건의료계 리베이트 근절 자정 선언 추진…적발 시 퇴출안 마련

약값에 낀 거품을 걷어내고 국민 의약품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의약분업 이후 최대 규모의 약가 인하 계획을 발표한 뒤 제약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던 정부가 한 발짝 물러섰다.

제약업계의 의견을 수용해 약가 인하 시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필수의약품을 가격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고, 개량신약과 혁신형 제약사가 생산한 복제약 및 원료합성 복제약의 약가는 우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경우 약값은 평균 14% 인하된다.

이와 함께 제약산업 발전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의 근본원인인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범보건의료계가 참여하는 리베이트 근절 대협약 체결을 유도하는 한편 리베이트 적발 시 건강보험 급여 정지, 품목허가 취소, 면허취소 등 강경책 등을 통해 시장에서 영구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보건복지부는 제약계의 광범위한 의견을 수렴해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새로운 약가 인하 고시안을 마련해 다음 달 1일 고시한다고 31일 밝혔다.

◇제약업계 충격 줄이는 대신 국민 약품비 절감액은 대폭 줄어 = 복지부는 ▲계단식 약가 인하 제도 폐지 ▲동일 성분 의약품에 대한 동일 보험 상한가 부여 등 지난 8월에 발표한 약가 인하의 큰 틀은 유지하되,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과 연구개발(R&D) 촉진 등을 명분으로 가격 인하 제외 및 약가 우대 대상을 설정했다.

우선 의약품의 안정적 공급 차원에서는 단독등재 의약품, 퇴장방지 의약품, 기초수액제 등 약가 인하로 공급 차질이 우려되는 약 4천700개 품목의 '필수의약품'은 가격 인하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생산기업이 3개 이하인 희귀의약품은 약가를 우대하기로 했다.

또 제약업계의 R&D 촉진을 위해 개량신약, 혁신형 제약기업이 생산한 복제약과 원료합성 복제약 등도 약가 우대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 밖에 올해 12월 이전에 건강보험에 등재된 의약품은 새로운 약가 산정 기준에 따라 약가를 재평가하되, '제네릭 등재에 의한 오리지널 약가 인하 원칙'이 도입된 2007년 1월1일자 가격으로 동일제제 최고가를 판단하고, 가격이 동일효능군 제품 중 하위 25% 이하인 상대적 저가 제품은 가격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 전체 건강보험 등재 의약품 1만4천410개 중 가격 인하 대상 품목은 애초 8천776개에서 7천500여개로 줄어든다.

전체 약가는 평균 14% 인하된다.

이 경우 제약업계는 급격한 약가 인하에 따른 충격파를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지만, 동시에 국민의료비 절감액(기등재의약품 목록 정비 포함)은 당초 2조9천억원에서 2조5천억원으로 4천억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복지부는 새로운 약가 인하 고시를 연내에 확정해 내년 1월 중 시행하기로 했다.

이 경우 기등재약의 가격 인하 고시는 내년 3월 중 이뤄지며, 실제 약가는 4월부터 인하된다.

또 정부는 중장기적인 약가제도 설계를 위해 제약계와 의료계,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협의체를 내년 3월까지 구성해 투명하고 적정하며 예측가능한 약가제도를 검토하기로 했다.

최희주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관은 "약가 인하의 큰 틀은 유지하되 제약업계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노력했다.

제약업계와 대화를 강화하고 정부가 지닌 진정성도 알리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약업계는 완화된 약가 인하안에 대해서도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베이트 근절 보건의료계 자정 선언 추진…적발시 퇴출 시스템 도입 = 약가 인하에 따른 제약업계의 충격파를 줄이기 위한 이런 조치와 함께 복지부는 보건의료계의 오랜 관행인 리베이트를 발본색원하기 위한 대책도 마련했다.

이를 위해 우선 올해 말까지 제약업계와 의료계·약계·유통업계가 모두 참여하는 '보건의료계 대협약(MOU)'을 이끌어내기로 방침을 정하고, 공동협의체를 구성해 이행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업계 스스로 '자정'을 선언하고 자율감시 시스템을 강화하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

또 정부는 최대 23개월에 이르는 의약품 대금 지급 관행을 개선하고 수가체계를 합리화하는 등 보건의료계가 리베이트를 줄일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반면 자정 선언 이후에도 리베이트 관행이 적발되면 곧바로 해당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서 삭제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 제도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같은 관행이 3차례 누적되면 아예 품목 허가를 취소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이 밖에도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약사에 대해서는 면허 취소와 명단공개 등 강력한 퇴출 수단도 마련했다.

현재는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와 약사의 경우 최대 12개월까지 면허 정지만 가능하다.

최 정책관은 "업계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주기를 바라지만 제약계뿐만 아니라 보건의료계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다만 자정 노력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수단은 적극적으로 검토할 것이며 전에 없었던 조치도 나올 수 있다.

필요하면 법령도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제약산업 육성 방안도 구체화 = 이와 함께 복지부는 지난 8월 약가 인하와 함께 내놓았던 제약산업 육성 방안도 한층 구체화해 이날 발표했다.

우선 혁신형 제약기업 선정 기준의 경우 기존에 제시했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비중 이외에 미래 연구개발(R&D) 투자계획, 특허 보유 실적, 해외 진출 역량 등을 다각적으로 반영하기로 했다.

또 우리 제약기업의 해외 진출 유인을 제공하고 기술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신약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지원도 지속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특히 우리나라가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지원 규모를 대폭 늘리는 한편, 바이오 신기술 관련 연구개발 지원 사업과 유전체 분석사업 등의 예산도 늘릴 계획이다.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연구과제를 성실하게 수행한 업체에 대해서는 연구개발이 결실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이에 대한 제재조치를 면제 또는 감면해주기로 했다.

이 밖에 제약산업 글로벌화에 필요한 생태환경 조성을 위해 관련 정보, 인력, 인프라 측면의 지원도 강화하기로 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훈 기자 meola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