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재정부 예산실의 횡포
"예산실에 한 번 밉보이면 큰일 납니다. 어렵게 배정받은 예산도 줄어들 수 있어요. "(환경산업기술원 고위관계자)

기자는 지난주 환경부와 그 산하기관인 한국환경산업기술원 고위 관계자들로부터 잇따른 전화를 받았다. 환경부와 은행,유통업체 등 민간기업이 함께 지난 7월 말 출시한 '그린카드'에 대한 내용의 취재(본지 26일자 A33면 참조)와 관련된 것이었다. 녹색생활을 실천한다는 목표로 선보인 그린카드가 정부의 예산부족에다 부처 간 의견차로 보급 확대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기획재정부 해당과에서 '그린카드 사업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 기업'이라는 이유로 예산 배정이 안 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 취재를 하자 그린카드 운영기관인 환경산업기술원 측에선 하루에만 10통이 넘는 전화가 걸려왔다. 기술원 고위 관계자는 "관련 기사가 보도되면 재정부 예산실의 미움을 살 게 뻔하다"며 "그러니 기사를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기술원은 그린카드 운영기관으로서 해당 예산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다. 예산이 배정되지 않으면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도를 꺼리는 이유가 뭘까. 정부 부처 고위직 출신인 이 관계자는 "관련 내용이 보도되면 직접 당사자인 우리가 그것을 (불만으로) 제보했다는 오해를 사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예산실 실무 담당자한테 찍혀서 재정부 사무실엔 발길조차 들이지 못한다"고 했다.

정말로 그 정도인가. 예산실에 확인을 해봤다. 예산실 관계자는 "정부 예산은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배정된다"며 "예산실에 밉보인다고 해당 기관 예산이 줄어든다는 것은 기우(杞憂)"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예산에 대한 합의가 끝난 뒤에 다른 경로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면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다"며 '여운'을 남겼다.

한정된 예산에 달라는 곳,써야 할 곳은 많은 정부 예산을 짜임새있게 편성해야 하는 예산실 공무원들의 고충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요구하는 예산안을 전부 다 수용할 수 없다는 말도 당연히 맞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산실 담당자들의 '개인적인 선호'가 과하게 반영되지는 않는지,예산 배정을 받느라 '을' 처지가 된 다른 부처와 기관에 고압적이지는 않은지 신중히 돌아볼 때가 됐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