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지속성장의 DNA
얼마 전 모 대학 경영학과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주제가 '기업은 망한다'였는데,제목만 들었을 때 환기되는 이미지는 운명론적인 부정의 메시지였다. 필자를 비롯해 함께 있던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의아해하며 강의를 들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며 필자 역시 교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연구에 따르면 1965년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2009년까지 살아남은 기업은 단 12개뿐이라고 한다. 외국의 사례에서도 포천지 선정 세계 100대 기업의 수명은 30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글과 같은 기업 생태계에서 기업의 흥망성쇠는 당연하다 하겠지만,많은 기업들이 인간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갖고 있다는 것에 놀랍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경기 침체 등 경영환경 악화에 대처하지 못해 사라진 기업,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실패해 망한 기업,그리고 경영층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쇠락의 길로 접어든 기업 등 주변에 그런 사례는 많다. 반면 제너럴일렉트릭(GE)과 같이 120년 넘게 장수하는 회사도 있으니 기업이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주기도 한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필자는 그중 인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성원이 일하는 동안 회사를 위해 얼마나 기여하고 희생하느냐에 따라 그 회사의 수명이 결정된다. 유한(有限)의 생명을 가진 구성원이 기업의 생명을 무한대로 연장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기업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을 채용하고 그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제반 환경을 조성해 주며 성과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강력한 생존과 지속적인 성장의 DNA를 가질 수 있다.

블루오션의 대명사인 '태양의 서커스' 사례에서 인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인종,출신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직 재능만 보고 인재를 채용한다. 50여개국에 달하는 다양한 국적,5세에서 69세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부터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생활의 달인'까지 단원들은 각양각색이다. 이들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공연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글로벌 기업에 견줘 볼 때 이런 과감한 발탁과 관리가 부족하다. 특히 '한 명의 천재가 수천,수만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현 시대에는 이런 '천재'를 관리하는 방법도 혁신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그들이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는 경우도 많다. 5000명 단위 기업에서 최상급 인재 1%의 이직을 막는 것은 100만달러를 아끼는 것과 같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직이 잦으면 금전적 손해뿐 아니라 결국엔 기업의 생존마저 위태로워진다.

"인물은 하늘이 내리고 인재는 사람이 만든다"고 했다. 기업이 얼마나 인재관리를 잘 하느냐에 따라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장수가 길러진다. 올해를 결산해 가는 시점에 한 해 인재 농사를 되돌아 보고 내년을 미리 구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용종 < SK㈜ 부회장단 사장 yongjong@s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