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인기 명품 화장품, '저렴이' 버전 나와 있어
가격차 최대 10배까지 나
명품업체 "상업윤리 어겨" 날선 반응

직장인 고은진 씨(26)는 화장품이 필요할 때마다 백화점 명품 매장을 둘러보며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고 발라본다. 하지만 정작 그의 지갑이 열리는 곳은 저가 브랜드숍. 저가 브랜드숍에 인기 명품 화장품의 미투제품인 일명 '저렴이'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고 씨는 "웬만한 명품 화장품은 거의 다 카피제품으로 나와 있다"며 "요즘 화장품에 관심 있는 여성들은 저렴이 제품을 알아본 후 쇼핑한다"고 말했다.

실제 24일 고 씨가 백화점에서 본 슈에무라의 '루즈 언리미티드' 제품과 저가 브랜드숍 토니모리의 '프레스티지 크리스탈 립스틱'은 투명 용기 디자인과 발림감이 비슷해 구별하기가 힘든 정도다.

그는 "슈에무라 립스틱(3.7g)이 3만2000원이고 토니모리 제품(3.2g)이 8800원으로 3배 이상 차이난다"며 "비슷한 디자인과 품질인데 굳이 비싼 제품을 살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이처럼 명품브랜드의 인기 제품을 베낀 저가 브랜드숍의 '저렴이' 제품이 뜨고 있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는 저렴이 제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방영되고 있다.

저가 브랜드숍에는 배우 신민아 매니큐어로 유명한 샤넬의 르베르니 307, 랑콤의 에리카 아이섀도우, 디올의 글램 하이라이터 등 인기 명품 화장품의 카피제품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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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상업윤리 어겨" vs 브랜드숍 "소비자 니즈에 따른 것뿐"

명품업체와 저가 브랜드숍 측은 저렴이 제품을 놓고 치열한 갑론을박을 펼치고 있다. 명품업체는 저가 브랜드숍이 인기 제품을 그대로 카피해 상업윤리를 어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가 브랜드숍은 비싼 명품을 살 여력이 안 되는 소비자들을 위해 비슷한 컨셉트의 제품을 내놓는 것뿐이라며 이에 반박하고 나섰다.

슈에무라 관계자는 "토니모리가 베낀 루즈 언리미티드의 투명 용기 디자인은 2006년 우리가 처음 시도한 것"이라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캘빈 차오의 작품을 토니모리 그대로 베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 관계자들이 저렴이 제품을 보고 '한국 화장품 시장에 상업윤리와 자존심이 없다'고 말한다"며 "최근 용기 디자인을 친환경 패키지로 바꿨다"고 밝혔다.

토니모리 측은 이에 대해 "저렴이 제품은 명품 화장품의 컨셉트를 따라한 것이지 완벽하게 카피한 제품이 아니다"며 "저가 브랜드숍이 품질력을 갖고 연구·개발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사실 저렴이 제품이 계속 나오는 건 명품과의 품질 차이가 좁혀졌다는 것"이라며 "이를 두고 무조건 따라했다고 밀어붙이는 건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브랜드숍 관계자에 따르면 브랜드숍의 고객은 대부분 중산층 및 서민층이다. 비싼 명품을 사기 어려운 소비자의 니즈를 반영해 저렴이 제품을 선보인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싼 가격에 좋은 화장품을 사려는 우리 고객층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명품을 벤치마킹하고 있다"면서 "명품 화장품 고객은 대부분 가치를 함께 사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저렴이가 명품과 똑같다고 해도 저가 브랜드숍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렴이 판매 제재할 방법 없어…명품업체는 손놓고 불구경

명품업체 측은 이처럼 날선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슈에무라와 랑콤 관계자는 "카피제품 판매를 막을 방법이 없어 관련한 조취를 취하거나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대한화장품협회에 따르면 현재 저렴이 제품의 판매를 제재할 법적인 조치는 없다. 제품명이 똑같을 경우 '상표권' 침해로 법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컨셉트와 발색 등으로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

서선영 대한화장품협회 교육홍보 팀장은 "저렴이 제품과 명품 화장품 사이의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달렸다"며 "디자인 특허출원 등 명품업체들이 더 발빠르게 뛰는 방법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