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 활성화 지름길 '여가ㆍ관광'
일자리 창출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언론보도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국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에는 항상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나누기가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근로시간의 단축이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이뤄진 서구의 경우 이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찾기 어렵지 않다. 이들 담론을 살피다 보면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우리의 논의가 그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그 본질이란 근로시간 단축이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대한 인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의 주35시간 근로나 연 6~8주의 유급휴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하기 싫어하는 인간 본성의 게으름이나 과도한 사회복지의 폐해로 여기는 경향이 그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경제성장과 소득증가만이 사회 발전의 유일한 최선의 방향이 아니며,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게 환경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또 다른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미처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근로시간 단축의 키워드는 경제성장이다.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얼마나 우리사회가 경제성장과 소득의 증가를 양보할 준비가 돼있는가 하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근로시간 단축은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 중 우리 사회가 무엇을 선택했는가 하는 것은 최근 대체공휴일제에 대한 논의가 생산성 저하라는 경제적 이유로 무산된 데서도 잘 드러난다.

경제성장과 일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여가가 가지는 특징은 수동성이다. 여가의 수동성이란 여가가 휴식,재충전과 같은 일을 위한 보조적 기능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휴식과 재충전은 대개 소비를 통해 이뤄진다. 즉 일과 경제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여가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소비행위로서의 여가에 있다. 원활한 소비가 원활한 경제의 요건이 될 때,생산 외의 시간인 여가는 중요한 소비의 영역인 셈이다. 생산과 소비가 동전의 앞뒷면인 것과 같이 일과 여가도 동전의 앞뒷면이다. 이는 여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듯 일로부터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 사실은 일과 경제에 부속된 영역임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은 여가활동의 한 종류인 관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는 현대사회에서 관광이 일의 부속물임을 잘 나타내준다. 관광은 일정기간 유예했던 일에 대한 보상이다. 이처럼 관광이 일의 보조적 기능으로 축소될 때 관광은 나름의 독립적 의미를 가진,진지한 추구 대상이 되기 어렵다. 과거 관광 이론가들은 관광의 본질을 성찰과 극복이 내재된 종교적 체험이라든가 탐구(quest)로까지 승화시켜 놨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관광의 격을 높이지 않더라도 현대 관광객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것은 바로 소비자이다. 관광은 상품이고 경제 활성화의 수단에 다름 아니다.

마침 지난 14일 경주에서 성황리에 막을 내린 제19차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총회는 관광에 대한 진정한 정체성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번 총회는 60여개국 관광 장 · 차관을 비롯해 125개국에서 대표단,학계 · 업계 전문가 등 1000여명이 참석한 세계 관광축제로,전 세계 관광산업 발전과 관광의 역할 등을 집중 토의했다. 참석자들은 '지속가능한 관광'을 실현하기 위해 녹색관광시장을 2015년 25%까지 늘린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는 등 성과도 올렸다. 이번 경주 총회가 우리나라 여가 문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더불어 진정한 관광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