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받아적을까, 키보드를 두드릴까
최근 한 소프트웨어 업체 대표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다. 1시간 남짓한 인터뷰가 끝난 뒤에 그는 기자에게 "인터뷰할 때 손으로 받아 쓰는 기자는 정말 오랜만에 본다"고 말했다. 인터뷰할 때도 노트북을 펼쳐 놓고 말을 받아적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다.

기자라고 노트북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간담회나 기자회견,콘퍼런스 등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말을 듣고 기록해야 하는 자리에선 펜을 놀리기보다는 노트북을 사용할 때가 훨씬 많다. 노트북의 가장 큰 장점은 월등한 속도다. 독수리 타법이 아닌 이상 조금만 연습하면 타인이 하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 적을 수 있다. 일단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두면 보관이 편하고 복사,수정,출력 등 2차 가공이 편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럼에도 많은 기자들은 여전히 펜과 수첩을 들고 다니며 누군가를 만나고 말을 기록한다. 이 오래된 방식의 좋은 점을 꼽는다면 휴대성일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들고 다니면서 뭔가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펜과 노트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하지만 단순히 이 때문만은 아니다. 무언가를 듣고 (빠르게) 기록할 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경우 단선적으로 텍스트만을 저장할 수 있다. 반면 종이에 받아 적는다면 그보다 더 입체적인 기록이 가능하다.

◆펜으로 쓰기 vs 키보드 두드리기

쉽게 얘기하자면 이런 것이다. 한 콘퍼런스에서 유명 강사가 멋들어진 슬라이드 화면을 동원해 세션 발표를 하고 있다. 노트북으로 발표를 기록한다면 사실상 남는 것은 강사가 했던 말뿐이다. 말 이외의 것을 적거나 그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빠른 속도로 타이핑하는 와중에 마우스를 움직이는 등 다른 행동을 하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반면 노트에 쓰는 경우 상대적으로 정확한 강의 내용을 받아 적는 것은 힘들지만 슬라이드에 나온 다른 그림이나 도표 등을 틈틈이 기록할 수 있다. 특히 텍스트를 직선적으로 옮겨 적는 컴퓨터에 비해 노트는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자유롭게 쓰는 것이 가능하다. 기자가 굳이 인터뷰할 때 펜을 고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받아 적으면서 실시간으로 선을 긋고 말 덩어리들을 연결시켜 답변을 범주화하곤 한다. 이를 통해 상대방이 했던 말의 맥락을 정리하는 한편 빈틈을 찾아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이 같은 일을 하기엔 아직까지 노트북보다 노트가 더 손쉽게 느껴진다.

물론 두 방법 모두 각각의 장 · 단점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의 기자들은 상황에 따라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해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적으로도 한참 동안 팔 아프게 펜을 놀리는 것보단 키보드를 두드리는 쪽이 더 편하긴 하다.

◆손으로 '쓰는' 행위가 더 직관적

사실 이 같은 차이는 노트와 컴퓨터라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매체의 특성 때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글자를 손으로 쓰는 것과 키보드로 자판을 두드려 기록하는 방식의 차이다. 손으로 글자를 '쓰는' 쪽이 두드리는 쪽보다 더 직관적이다. 키보드의 경우 모음 자음을 따로 입력해 조합하는 방식이다. '한경'이란 단어를 입력할 때 'ㅎㅏㄴㄱㅕㅇ' 등 총 6개의 자음과 모음을 따로 쳐넣는다. 반면 손으로 쓸 때는 자소가 아닌 음절 단위로 인식해 글자를 쓴다. 그 외에도 손으로 쓰는 방식이 공간 활용도 자유롭고 글자 이외의 다른 정보를 더 쉽게 담을 수 있다.

사실 뭔가를 손으로 그릴 수 있는 디지털 장치가 없던 것은 아니다. 태블릿 기능을 탑재한 노트북이 꾸준히 나왔고 최근 1~2년 사이에 급속도로 보급된 아이패드,갤럭시탭 등 태블릿PC에서도 펜을 이용해 노트처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편의성 등의 측면에서 아직까지는 종이와 펜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최근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감안할 때 몇 년 지나지 않아 노트의 기능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리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쓰기와 두드리기를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나온다면 기자들의 짐도 좀 줄어들지 않을까.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