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복지와 포퓰리즘 사이
내년 예산을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항목들이 꽤 있다. 단적인 예가 저임금 근로자에게 4대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본인 부담이 원칙이다. 자기가 부담한 만큼 사후적으로 돌려받는다. 그런데 정부가 보험료의 3분의 1을 대신 내주기로 했다. 여기에 나랏돈 670억원이 들어간다.

영유아 무상접종에도 300억원이 배정됐다. 지금도 영유아는 보건소에 가면 공짜로 접종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병원에 가는 사람들까지 정부가 돈을 다 대주기로 한 것이다.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가정은 내년부터 소득에 관계없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양육수당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36개월까지만 지원했다. 내년부터는 부모가 얼마를 버는지 상관하지 않고 한 명당 매달 10만원을 주기로 했다. 여기에 37억원이 들어간다.

돈의 과다에 관계없이 위에 열거한 사업이 '필요한 복지'냐 아니면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냐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컨대 사회보험료 지원은 월급이 124만원이 안되는 근로자 122만명이 대상이다. 기획재정부는 청와대에 보고하면서 대표적인 무상복지 정책이며,정치적으로 공격을 당하기 쉽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영세사업장의 임금 구조가 열악해 사업주가 4대 보험료를 근로자의 월급에서 떼는 경우가 많다'며 예산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불법이라고 단속하기도 어렵고,사업주에게 "왜 고용보험에 가입을 안 시키느냐"고 다그칠 상황도 아니라는 것이다.

영유아 무상접종은 맞벌이 부부가 평일에 보건소를 갈 수 없는 사정을 감안한 것이다. 재정부는 보건복지부를 통해 토요일에 전국의 보건소 문을 여는 데 필요한 돈을 계산했다. 300억원보다 많이 든다는 결론이 나왔다.

장애아동 양육수당은 전국에 이들을 돌보는 어린이집이 없어서 취학 전까지 계속 집에서 부모가 아이를 돌봐야 한다는 현실을 감안했다.

이렇듯 따지고 보면 다 이유가 있고,필요한 돈이다. 물론 모두 국민이 낸 세금에서 나온다.

기초노령연금은 어떨까. 만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이 74만원이 안 되는 387만명에게 매달 평균 9만1000원을 준다. 연금액은 국민연금제도와 연동돼 있다.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 평균 월 소득액의 5%다. 한나라당은 이 비율을 6%로 올리자고 하고 있다. 1%포인트지만 7000억원이 더 들어간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인표를 겨냥한 선심성 복지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9만원으로 노인빈곤층의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지원 대상을 줄이거나 지급연령을 올리면 예산을 더 늘리지 않더라도 지급액을 높일 수 있다. 물론 올해 받는 사람이 내년에는 못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내년 예산은 392조원이다. 이 중 복지관련 예산은 28%인 92조원이다. 복지는 사회적 가치와 공적 이익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10 · 26 재 · 보선이 끝나면 내달부터 국회에서 본격적인 예산 심의에 들어간다. 어떤 항목이 어떤 이유로 추가될지,삭감될지는 아직 모른다. 우선 순위를 정하고 빠진 사업은 없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산적인 논쟁이 벌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