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편애(偏愛)의 기억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급한 첫날 첫 시간이었다. 새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서 하셨던 첫 말씀이 40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나는 공부 잘하는 애들만 편애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나랑 가까워지려면 공부 잘하는 방법밖엔 없다. " 지금 시대라면 아마도 인터넷에 올라 시끄러운 논란을 빚어낼 말씀이었지만 그때는 다소 충격을 받기는 했어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는 매달 전 과목 시험을 치르고 1등부터 꼴찌까지 석차를 공개했다. 지난달 1등한 학생이 이달에 2등을 했다면 여지없이 종아리를 한 대 맞아야 했다. 그것도 아주 세게.10등 떨어졌다면 열 대,50등이 49등을 했다면 종아리를 안 맞아도 됐다. 이런 훈육방법으로 경쟁을 유도했다. 당시 10대 까까머리 소년들은 경쟁의식 속에서 성장하며 둘도 없는 친구를 동시에 꼭 이겨야 할 무서운 적으로 느끼곤 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난 우리는 이렇게 체득하는 경쟁의식이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극히 중요한 지렛대가 될 것이라는 어렴풋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을 하며 성장했다.

나는 그런 훈육방법에서 비롯되는 경쟁이 몸서리쳐지도록 싫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경쟁에 본격적으로 내몰리면서 무의식적으로 내 정신세계와 행동양식의 일부분이 돼 갔다. 아마도 '세상은 어차피 공평하지 않다'는 의식이 내 머릿속을 지배하게 됐을 테고,그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는 싫든 좋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회에 나와 어느 조직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남의 밑에서 평가를 받기도 하고 남을 평가하는 지위를 갖기도 한다. 더구나 그 조직이 사기업처럼 무한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곳이라면 더욱 가열찬 경쟁을 요구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후배직원들에게도 서슴지 않고 "나는 일 잘하는 직원만 편애한다"고 위협 같은 언어를 내쏟았다. 그때 그 후배들이,특히 신입사원들이 느꼈을 위협이나 위화감을 모른 체하면서….그만치 나는 그들의 열정적인 업무 태도를 이끌어내고 싶었다고 변명한다.

요즘 '상생'과 '공정사회'를 많이 얘기한다. 무한경쟁에서 뒤처져 스스로를 '루저(loser)'라고 비하하는 젊은이들의 슬픈 얘기도 많이 듣는다. 그들은 참다 못해 거리로 뛰쳐나오기도 한다. 모두가 잘사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는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완벽히 가능할 것인가. 나는 부정적이다. 엄청나게 부유한 집안의 피상속인이 아니라면,경쟁과 거기에 따른 자기 책임은 필수적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하지 않던가. 결코 공평하지 않을 세상을 탓하기보다 그곳에 뛰어들어 싸워 이길 투지를 길러야 한다.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입술이 바싹바싹 마르고 눈에서는 피눈물이 나도록 일해본 적 있는가? 피눈물이라고? 진짜 있다. 며칠씩 밤새우며 벼랑 끝에 서서 죽을 힘을 다하다 보면 충혈된 눈에서 정말 피가 나온다. 내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