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선박왕 권혁' 조사 자신감 잃었나
한국 거주를 부인하며 소득세 등을 내지 않은 '선박왕' 권혁 시도상선 회장(61 · 사진)이 지난 10년간 국내 병원을 200회 넘게 다닌 것으로 조사됐다. 주요 거주지라는 홍콩에서는 1년에 단 이틀만 체류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다.

그러나 법원이 앞서 수사 내용에 대해 "혐의를 다툴 여지가 많다"며 연속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기각해 정식 재판에서 유죄 증거로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검찰이 논란 끝에 지난 11일 권 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도 내지 않아 '(수사에) 자신감을 잃은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애초 국세청의 과세와 탈세혐의에 대한 검찰고발이 무리수 아니었느냐는 지적도 있다.

◆"비거주자? 국내 병원 203회 들락날락"

12일 검찰에 따르면 권 회장은 2004년 10월 홍콩에 있는 시도쉬핑 명의로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내와 함께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2005년 10월 장모 명의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해 마치 국내에 일정한 거주지가 없는 것처럼 가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권 회장은 2006년 4월 일본에서 홍콩으로 주소 등록을 했지만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홍콩 거주 일수는 연간 많아야 100일,짧게는 2일이었다. 반면 국내에서는 1년에 135~194일을 거주했다.

권 회장은 또 2001년부터 2010년까지 해외에서 진료나 치료를 받은 적은 거의 없는 반면 서울삼성병원 등 국내 병원에서 203회에 걸쳐 진료와 치료를 받았다. 자신이 소유한 페이퍼컴퍼니 명의로는 서울 구기동 빌라 등 10건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검찰 수사 결과다. 국내의 유도해운,시도상선,시도쉬핑 영업소 등에 대해 100% 지분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내 법인들에는 아무런 직위나 직함이 없는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기도 했다. 결재란을 없애고 구두로 결재하거나,결재란이 아닌 별도의 란을 만들어 서명하는 등 방법이었다.

검찰과 국세청 논리대로라면 그는 한국에 주소를 둔 거주자로서 소득세와 법인세를 내야 했지만 비(非)거주를 주장하며 한 푼도 내지 않았다는 것.종합소득세 1672억원,법인세 612억원 등 2284억원을 포탈한 혐의다. 또 조선소에 부풀린 금액으로 선박을 발주한 후 실제 금액과의 차액을 챙기는 등 방법으로 99억여원을 횡령한 것으로도 조사됐다.

검찰 '선박왕 권혁' 조사 자신감 잃었나

◆권 회장 측,"검찰 수사 어이없다"

권 회장 측은 "검찰 수사가 어이없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권 회장의 측근은 "권 회장은 한국에 1년에 평균 120~130일 있었다"며 "딱 한 번 185일 거주했던 해가 있는데,전후 연도의 거주 기간이 짧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권 회장이 국내 병원에 203회보다 훨씬 적게 갔다"고 덧붙였다. 국내 법인들에 대해서도 "시도상선 등은 홍콩 본사의 법인이 아니라 대리점이어서 권 회장이 직함을 갖거나 결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7월 이후 권 회장을 8차례나 소환조사했다. 소환 횟수가 이례적으로 많다. 그만큼 혐의를 다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지난 8월 구속영장을 기각당한 뒤 지난달 검찰시민위원회의 힘을 빌려 재청구했지만 또 기각당했다. 그의 아내에 대해서는 아들 병역비리로 기소해 "별건 수사가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권 회장의 횡령 혐의는 보지 않고 조세포탈 부분만 보고 다툰다며 영장을 기각했다"며 "권 회장의 범죄 혐의는 명백하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