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식 "투자가 좋을지 M&A가 좋을지 고민"
"경제가 어려우니 투자가 맞는지 M&A가 맞을지 연구하고 있다. "

지난 11일 인촌상 시상식에서 기자와 만난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은 여전히 '전진'의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다. 외환시장이 불안하고 금융시장 위기감이 커져도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위기는 기회"라며 적극적 M&A(인수 · 합병)를 강조하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지난해 말레이시아의 타이탄케미칼을 인수했고 연내 KP케미칼 합병을 매듭지으려는 호남석유화학이 내년에도 과감한 투자와 M&A를 통해 성장을 이어갈지 주목된다.

호남석유화학은 인도네시아에 유화 공장을 신설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정 사장은 "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인 것은 사실이지만 넘어야 할 조건들이 많다"며 "인도네시아 정부 쪽과의 협의 등을 거치면 서둘러도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에틸렌 생산능력을 보면 호남석유화학이 연간 72만t(말레이시아),자회사인 케이피케미칼이 50만t(파키스탄) 규모다. 말레이시아 및 파키스탄 증설과 더불어 인도네시아에서도 100만t 규모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되면 국내 주력 생산기지와 비슷한 규모를 동남아에서 확보하게 된다.

KP케미칼과의 합병에 대해서는 "소액 주주들의 뜻에 달려 있는데 요즘 주가가 워낙 왔다갔다 해서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며 "(합병을)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2009년에도 합병을 추진했지만 소액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롯데 보유 지분을 제외한 43%의 지분을 소액주주들이 갖고 있다.

미래 신사업으로 초대형 에너지 저장장치 개발도 한창이다. 호남석유화학은 대용량 배터리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 미국 ZBB에너지와 '화학흐름전지(CFB · chemical flow battery)'를 공동 연구개발하고 있다. 정 사장은 "초기 단계지만 잘돼 가고 있다"며 "50?i급은 바로 양산이 가능한 기술을 도입했고 그것보다 큰 것은 공동연구 중"이라고 설명했다.

호남석유화학은 2012년 상용화 수준의 500?i급 '3세대 아연-브롬 화학흐름전지'를 개발할 계획이다.

사업성 검증과 합작사 설립 등을 거쳐 2015년까지 화학전지 사업에서 4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정 사장은 "집채만 하다"고 표현한 대형 배터리를 "롯데가 지을 초고층 건물에 전시해보는 것은 어떨까도 생각 중"이라고 덧붙였다.

인촌상 산업기술 부문을 수상한 정 사장은 이날 1억원의 상금을 전액 고려대 사범대에 기부했다. 고려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고 있는 딸을 생각해 내린 결정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인촌상은 일제강점기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유지를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윤정현/김동욱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