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도범에 털린 前장관집…금고는 멀쩡
지난달 말 한 전문 절도범이 노태우 정부 시절 상공부(현 지식경제부)장관을 지낸 이봉서 한국능률협회장의 자택에서 금고는 그대로 둔 채 귀중품만 훔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대한민국 1% 상류층의 은밀한 수납공간이었던 개인금고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금융업이 발달하면서 외면 받던 금고시장에 최근 기능성에다 화려한 디자인을 입힌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부유층 외에도 정치인,연예인,신혼부부,맞벌이 부부 등으로 수요층이 넓어지고 있다.

◆압구정 현대백화점 최고 매출은 '금고'

국내 금고업체는 서울과 부산에 집중돼 있다. 서울에선 을지로가 메카다. 하지만 최근엔 강남의 대형 백화점이나 가구거리에도 금고업체들이 진출하고 있다. 그만큼 강남 수요가 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서 단위면적당 매출액이 가장 많은 매장은 의류 코너가 아니다. 2009년 입점한 선일금고 매장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관계자는 "고위층,연예인,정치인 등이 주로 구매하지만 최근에는 신혼부부도 패물을 보관하기 위해 구매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보통 200만원대 금고가 가장 많이 팔리고 20만~40만원대 가정용 금고는 거의 팔리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고객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비싼 금고를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 소공동 본점 관계자는 "예전에는 맞춤형 금고가 인기였지만 최근엔 기성품이 다양하게 나와 100만원대 제품이 잘 나간다"고 말했다.

백화점을 벗어나 금고 로드숍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남 학동역 가구거리에 있는 금고전문점 safe21 관계자는 "쉽게 열리지 않는지에 대해 물어보지만 요즘엔 '5만원권이 몇 장이나 들어가느냐''여기에 한 3억원 정도 들어가느냐'고 묻는 고객도 많다"며 "가족 수만큼 금고를 사가는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고흐,클림트 명화 수놓은 금고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청진기를 이용해 금고를 여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이에 대해 금고 제작자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초창기 다이얼이 정교하지 못해 감각으로 번호를 알아낼 수 있었지만 금고 제작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어림도 없다는 것.

금고의 잠금장치는 다이얼에서 전자식 버튼,터치락으로 기술이 발달했다. 1000만원이 넘는 초강력 금고의 경우 이중,삼중 잠금장치가 돼 있다. 한 군데가 열리면 다른 잠금장치가 잠겨버리는 식이다. 공격했을 때 스프링이 튕기거나 유리가 깨지면서 문이 아예 잠겨버린다.

김봉규 금고백화점 대표는 "14년 전에는 망치 등으로 가능했을지 몰라도 요즘엔 산소용접기,대형 망치 등이 필요하다"며 "한마디로 최소 1t 이상의 금고를 들고 가지 않는 이상 전문 금고털이도 열 수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요즘 들어 고객들은 기능성보다 디자인을 보고 금고를 고르는 추세다. 집안 가구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디자인이 화려해졌다. 블랙 또는 와인컬러 위에 꽃무늬,클림트와 고흐의 명화,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장식 등을 수놓은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백승민 선일금고 상무는 "최근에는 철판에 광택제 또는 시트지 등을 붙여 냉장고나 와인셀러로 착각할 정도로 색감이 화려해졌다"고 설명했다.

심성미/김우섭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