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겸 의사였던 올리버 애비슨이 1893년 고종을 알현할 때 자전거를 타고 갔다. '신기한 물건'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고종은 두 바퀴인데도 어떻게 넘어지지 않는지를 물었다. 애비슨은 간단하게 설명한 다음 플록코트 자락을 접어 올리고 궐내를 빙빙 도는 시범을 보였다. 고종은 구경만 하고 말았지만 고종의 5남 의친왕은 미국에 유학한 신세대답게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분명치 않다. 1884년 12월 미 해군 랜스 데일 대위가 제물포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는 기사가 실렸다니(정성화 · 로버트 네프 '서양인의 조선살이') 적어도 그 이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보인다. 1905년 제정된 가로(街路) 관리규칙에는 '밤에 등화 없이 자전거 타는 것을 금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 무렵엔 자전거가 상당수 보급됐다는 증거다. 1920년대에는 엄복동이라는 사이클리스트가 주요 자전거대회 우승을 휩쓸면서 '쳐다보니 안창남(한국 최초의 비행사) 굽어보니 엄복동'이란 유행어를 낳았다.

서울의 자전거 수는 1946년에 2만9507대였으나 이듬해 5만2451대로 급증했다. 직장인이나 관공서 민원인이 주로 타고 다녔단다. 한동안 주춤했던 자전거가 얼마전부터 다시 늘어나는 건 녹색 레저 바람 덕이다. 보급률은 네덜란드(98%) 독일(87%) 일본(68%)에 턱없이 못미치는 17%,교통분담률도 독일(10%),일본(14%)보다 낮은 1.2% 수준이다. 자전거길 역시 일본의 8만㎞보다 짧은 9200㎞지만 최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서울만 해도 전용과 겸용을 합친 자전거길이 764㎞에 이른다. 한강 본류와 지류를 끼고 있는 길만 250㎞다. 충청 삼길포항길(삼길포항~대죽리~기은리~대산교차로 48㎞), 진도대교길(진도대교~청룡마을~지산면~신비의 바닷길~진도각휴게소 143㎞),남해 다랭이 해안길(한국의 아름다운 길 입구~월포마을~미조항~창선대교 115㎞) 등 지방 명소도 많다.

버려진 중앙선 철로를 활용한 팔당역~양평역 자전거길 27㎞가 8일 개통된다. 인천 서구 정서진에서 시작해 한강변을 거쳐 남한강을 관통하고,소백산맥을 넘어 부산 을숙도까지 이어지는 702㎞ 구간의 일부다. 서쪽 금강과 영산강 구간을 합쳐 총 1692㎞ 국토 종주 자전거길도 머지않아 열린다. 자전거 타기 좋아하는 사람들 신났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