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20대 연인, `강압수사' 후 자살

이란에서 평범했던 한 20대 연인이 반정부 활동에 연루돼 당국의 조사를 받은 뒤 남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1일(현지시간) 인터넷판에서 4주 간격을 두고 자살한 베흐남 간지(22)와 나할 사하비(28.여)는 "잔인하고 변덕스러운 이란 정부의 희생양"이라며 이 사건을 `이란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비극은 테헤란 대학에 재학 중이었던 간지가 반정부 운동에 가담했던 친구 쿠햐르 구다르지를 룸메이트로 삼으면서 시작됐다.

구다르지는 지난 2009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의 부정선거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돼 1년간 복역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지난 7월 31일 밤 두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급습해 이들을 테헤란 소재 에빈 교도소로 연행했으며, 곧바로 그의 여자친구인 사하비와 구다르지의 어머니도 체포해 같은 교도소에 가뒀다.

간지와 사하비는 각각 8일, 3일만에 교도소에서 풀려났지만, 간지는 석방된 이후 주변과의 접촉을 끊고 칩거하다가 결국 지난달 1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약을 먹고 자살했다.

신문은 지인들의 발언과 죄책감을 느낀다는 간지의 유서 내용을 인용, 그가 에빈 교도소에서 이란 당국의 협박에 못 이겨 친구인 구다르지에 대해 허위 사실을 진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한편, 사하비의 지인은 그녀가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자살로 죄책감에 빠졌다고 말했다.

사하비는 자신의 블로그에 "베흐남, 당신이 밉다.네가 없는 세상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 "만약 누군가 당신을 이토록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죽음에서 돌아올 수 있을 텐데" 등의 정서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글들을 올렸다.

결국 그녀는 "또다시 목요일이 돌아왔네. 이리와 베흐남, 우리 같이 춤추자"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올린 뒤 지난달 29일 간지와 같은 방식으로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문은 생전에 두 사람이 유치원 교사였던 사하비의 휴일에 맞춰 매주 목요일 데이트를 즐겼다고 전했다.

간지의 친구는 "이들의 죽음은 이란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면서 평범했던 이들의 비극적인 자살에 대해 "이란에서는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배영경 기자 ykba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