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위기 해법 '두더지 게임'
"유럽 각국 의회가 (EFSF 확대표결을) 속속 처리하고 있지만 앞으로 재정위기 해결을 전망하기 어렵다. "(독일 경제일간 한델스블라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각국 의회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심각해지고 있는 재정위기 대응을 위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실질 대출금을 확대하는 법안을 잇따라 처리 중이다. 그러나 EFSF 확충안 처리에도 불구하고 낙관은 어렵다. 그리스 2차 지원에서 민간부문이 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갑자기 제기됐다. '두더지 게임'처럼 한 가지 장애물을 넘으면 또 다른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힘겹게 '허들' 넘고 있는 EFSF

유로존 각국 의회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 지원을 위한 EFSF 확충안을 속속 처리하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 등 9개국 의회에서 EFSF 확충안이 통과됐고,29일엔 독일의회에서 찬성 523표,반대 85표,기권 3표로 확충안이 승인됐다. 이번 표결은 작년 5월 'PIGS' 국가 재정위기를 돕기 위해 조성키로 한 4400억유로 규모 EFSF의 자금 중 대출할 수 없도록 묶은 1900억유로를 풀자는 것.이 1900억유로는 AAA 신용등급을 유지하기 위한 담보금이다.

의회 표결에서 가장 강경한 조건을 내걸었던 핀란드가 전날 이 안을 일단 통과시켰다. 핀란드는 그리스가 담보를 잡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조건을 내걸며 확충안 처리를 가로막았었다. 가장 영향력이 큰 독일의회 표결도 넘겼다. 내달 11일로 예정된 슬로바키아 의회만 표결에 성공하면 유로존 모든 국가의 의회로부터 승인을 받게 된다.

하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건 아니다. 당초 4400억유로라는 기금 규모는 그리스 등이 파산할 것을 상정해 만들었는데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재정위기 희생양으로 거론되고 있어서다.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에서 EFSF 자금을 활용해 특수목적기구(SPV)를 설립하는 방안과 기금 규모를 2조유로로 확충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민간투자자 고통분담 늘려야" 논란

그리스 정부의 긴축정책 집행이 미흡한 탓에 EU와 IMF의 그리스 1차 구제금융 6차지원금(80억유로) 지급이 지연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090억유로 규모 그리스 2차 구제금융도 유로존 내부 의견차로 좌초 위기에 처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2차 구제안의 핵심인 민간 채권단 부채탕감(헤어컷) 비율을 기존에 합의된 21%에서 대폭 상향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채탕감 비율을 40%로 높일 경우 그리스의 부채 규모가 150억유로가량 추가 감축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그리스 채권에 크게 물린 프랑스 은행권과 유럽중앙은행(ECB)은 "채권 투매가 촉발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 영국 BBC는 IMF가 그리스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막기 위해 채무의 50%를 탕감해 주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고,그리스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은행 자본 확충,기업 돈줄 끊나

유럽 각국의 금융감독기관이 은행 규제를 강화하면서 유럽 기업들은 자금조달 경색이란 후폭풍에 직면하고 있다.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2014년부터 금융거래세를 도입하자"고 공식 제안했다.

바젤위원회는 "초대형 은행에 대해 자기자본비율 등을 확충하는 내용의 바젤Ⅲ 규제를 예정대로 실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은행 모임인 국제금융협회(IIF)는 "바젤Ⅲ가 시행될 경우 750만명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럽 금융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대출을 꺼리게 돼 유럽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최대 500억유로까지 늘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거래세가 도입되면 유럽에서 보호주의 움직임이 촉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