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의 경영권을 강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주총 안건에 무조건 반대하라는 내용으로 '자산운용사 의결권행사 가이드라인'이 개정된다고 한다.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특정 기업이 주총에서 기존 소유주의 경영권을 강화하거나 적대적 인수 · 합병을 막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안건에 대해 자산운용사는 무조건 반대투표를 해야 한다. 황금낙하산, 초다수의결권제,시차임기제 등이 반대해야 할 대표적 안건으로 열거돼 있다. 반면 소액주주들이 이사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이사후보추천제 도입에는 찬성할 것을 권하고 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 소유주가 경영권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당국이 나서서 기업이 적대적 M&A로부터 자신을 방어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대주주의 소유권이나 경영권을 부정하는 반기업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장치는 그 어떤 외국에 비해서도 미흡한 실정이다. 워런 버핏이 보유한 벅셔해서웨이 클래스A 주식은 의결권이 무려 1만5000개다. 구글도 대주주는 1주당 의결권이 10개다. 바로 금감원이 반대할 것을 권하고 있는 초다수 의결권 혹은 차등 의견권들이다. 황금낙하산이나 포이즌필 같은 것들은 대부분 미국 기업이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처럼 보호장치를 허용하지는 못할 망정 기업들을 적대적 M&A로부터 무장해제시키겠다는 게 바로 지금 당국이 만들려는 가이드라인이다.

국민연금이 경영권을 행사하겠다고 나서더니 이젠 금융당국이 자산운용사를 내세워 기업 소유권 제도를 거부하고 반기업 정서를 부추기는 물밑 선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가이드라인은 결과적으로 무분별한 M&A를 부추기고 주식시장을 단기적인 투기판으로 만들어간다. 지금도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변동성이 가장 높다. 바로 이런 구조 때문에 장기투자는 고사하고 투기자본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썰물처럼 빠지면서 원화가치가 급변동하는 등 꼬리(증시)가 몸통(경제)을 흔드는 식의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시장을 통한 기업 감시나 규율이 허망한 투기적 논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 금융위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의 하나다. 더구나 펀드 투자자들의 수익에 직결되는 주주권 행사를 당국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이는 당국의 지적 수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