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예의지국인 우리나라에서 경조사가 생기면 주변 사람들이 십시일반 축의금,부의금을 내서 축하하거나 위로하면서 큰일을 치르는 미풍양속이 있다.

그런데 사회적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축의금이 부담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친밀도나 여러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를 봉투에 담아야 할지 고민스러울 때도 있다. 3만원을 하자니 요즘 물가에 비해 적은 것 같고,받는 쪽에서 서운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렇다고 5만원,10만원을 내기에는 부담이 된다. 경조사가 많은 달에는 전체 지출 액수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매한 상황을 정해주는 남자의 약자인 '애정남'이란 TV 코미디 프로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끌어내며 인기를 얻고 있다.

애매한 상황,즉 딜레마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이 역시 문제를 분석한 뒤 시간,공간,조건에 의한 분리 개념을 적용해 보면 된다. 시간적으로 결혼 성수기에는 3만원,비수기에는 5만원이나 10만원.조건에 따라서 내가 이전에 받은 액수 기준으로 액수를 결정하거나 받는 상대 집안의 경제사정이 어려워 보이면 5만원 또는 10만원.이런 식으로 애매한 상황을 분석해서 나름의 기준을 추가할 수 있다. 트리즈의 문제해결 원리를 활용하면 생활 속의 애매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마트 시식코너에서 시식을 할 때 좀 애매한 상황이 있다. 한 번의 무료 시식은 먹는 사람이나 시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문제 될 게 없다. 문제는 무료 시식 횟수가 서너 번까지 늘면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먹는 사람은 도둑질이라도 하는 것 같은 죄책감이 들고,시식을 내놓는 사람은 소비자에 대해 얄미운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료시식은 몇 번까지 괜찮을까. 애매하다. '애정남'에서는 이런 상황을 무료 시식이 '간에 기별이 오기 시작하는 조건'을 기준으로 삼았다. 무료시식 횟수가 3회까지 시식이고 네 번째부터는 간에 기별이 오니 식사라고 규정,상품을 사야 한다며 위트 있게 결정해 주었다.

요즘 이념갈등과 지역갈등을 넘어서 경제적으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공생발전이 화두다. 어느 한쪽만을 밀어주기에는 모호한 상황이다. 과거 경제 성장기에는 대기업 위주의 지원책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빠른 추종자(fast follower)로 중진국 대열에 올라섰다. 그러나 이제는 중소기업,서민 위주의 선진국으로 가는 국가 정책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기업은 대량생산과 마케팅,글로벌 시장 진출 등으로 대규모 매출을 일으키는 데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상황에서 모든 요소 기술과 구성부품을 자체 조달하기에는 몸집이 크고 의사 결정이 느려서 경쟁력이 약하다. 반면 중소기업은 조직이 작고 유연해 필요한 기술과 부품을 신속하게 개발하는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자금력,마케팅 능력,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절묘한 조화가 보이지 않는가? 중소기업들이 현재처럼 납품 단가를 낮춰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성장 파트너로서 공생발전의 길을 가야 한다.

즉 대기업은 매출과 마케팅을,중소기업은 요소기술,부품,소프트웨어,연구개발,오픈 이노베이션을 각각 담당하는 것이다. 역할분담이 안돼 생기는 병목(bottleneck) 현상은 정부가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중립적으로 해소해 줘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깊어지고 있는 갈등 요소를 지속적으로 줄여갈수록 시너지 효과는 커질 것이다.

한국산업기술대 교수 · 한국트리즈학회 총무이사 lkw@kp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