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은행들이 대출을 중단하고 현금을 쌓아놓고만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면서 돈을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져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민간 은행들이 유럽중앙은행(ECB)에 예치한 자금 규모가 6일 현재 1690억유로라고 9일 보도했다. 석 달 전인 6월15일에는 이 돈의 규모가 49억8000만유로였다.

민간 은행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현금 일부를 중앙은행에 맡겨놓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이자를 거의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규모의 은행 자금이 ECB에 몰리는 것은 이례적 현상이라고 FT는 설명했다.

FT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유럽 은행들이 ECB에 맡긴 돈의 규모가 제로(0)에 가까웠다"며 "현재 ECB 예치금 규모는 2010년 8월 이후 최대 수준"이라고 전했다. ECB 예치금이 늘어난다는 것은 은행들이 대출에 소극적이라는 의미다. 유럽 은행들은 다른 은행에 대한 대출도 줄이고 있어 금융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닉 매튜스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유럽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은행 간 대출이 막히면서 많은 은행들이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다"며 "ECB로부터 긴급 자금을 빌릴 수는 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며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