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 나이차 뛰어 넘은 한국 思想史 최대 논쟁 '나귀의 등짐'에 답이…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인문학 산책 - 한국고전번역원과 떠나는 지식여행…퇴계와 고봉 '논쟁의 지혜'
이황과 기대승의 토론
평행선 달리듯 지루했지만 번뜩이는 해학으로 마무리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성리학의 참된 의미는…전체성-변별성 모두 보기
이황과 기대승의 토론
평행선 달리듯 지루했지만 번뜩이는 해학으로 마무리
사단칠정(四端七情) 논쟁
성리학의 참된 의미는…전체성-변별성 모두 보기
논쟁은 한갓 논쟁을 위한 논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 1501~1570)와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 1527~1572) 같은 탁월한 학자들 사이의 토론도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으로 오래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 두 학자는 지루한 논쟁을 번뜩이는 해학으로 멋지게 마무리했고,마침내는 서로의 견해를 일정 부분씩 수용해 진일보한 결론을 도출하는 데 이르렀다.
퇴계가 고봉의 편지를 받고 쓴 답장 '기명언에게 보냄(與奇明彦)'에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중간에 다시 생각해 보건대 의리를 변석(辨析)하는 것은 진실로 지극히 정미하고 해박해야 하는데 돌아보면 그동안 논변한 것은 단서가 매우 많고 사설(辭說)이 매우 길어서,나의 견해가 이루 다 망라하지 못하고 조예가 미치지 못한 곳들도 혹 있었습니다…보내온 편지에서 두 사람이 나귀에 짐을 실은 것에 비유한 말씀을 가지고서 장난삼아 절구 한 수를 지어서 보냅니다. '두 사람이 나귀에 짐을 싣고 경중을 다투는데/헤아려 보니 높낮이가 이미 고르거늘/다시 을 쪽의 짐을 갑 쪽에 죄다 넘기니/어느 때에나 짐 형세가 균평하게 될거나' 그저 웃고 마시기 바랍니다. "
퇴계와 고봉이 편지를 주고받으며 토론한 사단칠정(四端七情) 논변은 우리 사상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 학자의 본격적인 논변은 대략 1559~1561년에 벌어졌고,이 편지는 1562년 10월16일에 보낸 것이다. 이때 퇴계는 62세였고 고봉은 36세였다.
고봉은 한 필의 나귀에 짐을 싣고 두 사람이 양쪽에서 나귀를 몰고 가는 것으로 두 사람의 논변을 비유했다. 즉 길을 가다 보면 나귀 등에 실은 짐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을 수 없는데 짐이 기우는 쪽 사람이 상대편 쪽으로 짐을 들어 넘기면 상대편도 그렇게 하여,서로 상대편 쪽으로 짐을 넘기기를 반복하므로 짐이 평정해질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고봉의 이 비유를 퇴계는 시로 읊은 것이다.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에 대한 긴 논변을 이 자리에서 자세히 설명할 겨를은 없다. 간략히 정리하면,퇴계는 사단과 칠정의 개념을 둘로 나누어 보았고,고봉은 하나로 합하여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동양학에서는 체(體)와 용(用),일(一)과 다(多),전체성과 변별성,어느 쪽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학문의 성격이 결정된다. 크게는 불교의 선(禪)과 교(敎),유학의 주자학과 육왕학(陸王學) 내지 리학(理學)과 심학(心學)의 논쟁이 각각 이러한 개념들의 어느 한 쪽에 섬으로써 벌어진다.
사단과 칠정에 대한 논변에서 퇴계는 다(多),고봉은 일(一) 쪽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양자는 모두 상대방이 선 자리를 아주 부정하지 않고 일정 부분 긍정하는 위에서 자기의 주장을 폈다.
퇴계는 일(一)만을 주장하면 사물의 변별성을 드러낼 수 없어 리(理)의 개념을 밝히는 성리학의 참된 의미가 없어진다고 우려하고,고봉은 그렇다고 하여 다(多)만 강조하면 일(一)을 본체로 삼은 다(多)를 각개(各個)로 만들어 실상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반박한다.
이같이 양자가 서로의 치우침을 경계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착오를 깨닫고 마침내 중정(中正)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퇴계가 고봉의 견해를 일정 부분 수용해 만든 《성학십도(聖學十圖)》의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에 이르면 사단과 칠정이 본래 하나의 정(情)이면서 발현하는 단서에서 개념을 달리하여 나뉜다. 하나의 정임을 밝힌 것은 '심통성정도'의 중도(中圖)이고,개념을 달리해 둘로 나눈 것은 '심통성정도'의 하도(下圖)다.
여기에서 일(一)과 다(多)는 균형을 이루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를 융회(融會)할 수 있게 된다. 즉 각개의 다(多)는 전체성인 일(一)을 전제한 다(多)이므로 개체만 보고 전체를 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며,전체성인 일(一)은 각개의 다(多)를 포함한 일(一)이므로 사물의 다양한 개념을 무시한 채 공허한 관념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원문은 한국고전번역원(www.itkc.or.kr)의 '고전포럼-고전의 향기'에 있습니다.
이상하 <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