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프레스룸.30여명의 기자들이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교수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펠드스타인 교수는 이날 금융투자협회가 주최한 '100세 시대 도래와 금융의 역할'이란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이다. 그가 미국 경제 및 글로벌 경제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웬걸.펠드스타인 교수는 개인 일정을 이유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주최 측은 "공식 일정과 개인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했다"고 해명했다. 당초 초청 조건에 공식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포함돼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펠드스타인 교수를 잡지 못한 것이다. 펠드스타인 교수에게도 "30분 남짓에 불과한 강연의 대가로 1억원 안팎을 받아가는 유명 인사치고는 프로답지 못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7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헤지펀드 포럼'을 열었다. 연사로 초청된 일부 해외 전문가는 주제와는 달리 자기 회사를 소개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청중들 사이에서 "뭐하러 저런 연사를 불렀느냐"는 수군거림이 나왔다.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포럼이나 심포지엄에 해외 유명 인사를 초청하는 것은 이제 관행이 됐다. 이름깨나 알려진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 수천만원에서 1억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공비와 숙박비 등도 주최 측에서 부담한다. 행사 성공 여부가 이른바 '간판 연사'에 따라 좌우된다고 믿는 탓이다.

이런 노력과 정성을 들여도 이들의 강연이 매번 충실하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주제에 어긋나는 내용을 발표하거나 자신의 저서 내용을 홍보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강연시간도 길어야 한 시간.투입비용 대비 효율로 따지면 '밑지는 장사'인 경우가 많다.

금투협에서 초청한 펠드스타인 교수도 그렇다. 아무리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라지만,미리 약속된 기자회견마저 외면하는 걸 보면 주최 측은 분명 밑지는 장사를 했다. 선진 금융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거금을 투자하는 것이라면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먼저 확인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강지연 증권부 기자 sere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