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기업 16.7%가 로펌 소속 변호사 또는 고문

대형 법무법인(로펌)에 소속된 변호사와 고문이 대기업 사외이사로 대거 진출한 것으로 나타나 사외이사의 독립성 논란이 예상된다.

자문계약을 체결한 기업에는 로펌 소속 인사가 사외이사로 갈 수 없는 규정을 어긴 불법 사례도 매우 많은 것으로 의심되는데도 이를 제대로 확인할 방법이 없어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5일 재벌닷컴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100대 상장기업 사외이사 454명 중 16.7%인 76명(4명 중복)이 법무법인과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변호사와 고문 등이다.

대형 로펌 중 김앤장이 20명(1명 중복)으로 가장 많고 이어 태평양 11명, 광장ㆍ바른ㆍ세종 각 4명, 화우ㆍKCL 각 3명 등이다.

이들 상위 7곳에 소속된 인사가 49명으로 전체 로펌 출신 사외이사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로펌 출신 사외이사는 현대차와 신세계에서 특히 많았다.

현대차는 5명 중 3명이었고, 신세계는 4명 중 3명이었다.

대기업은 법무법인의 최대 고객이라는 점에서 로펌 출신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전횡을 감시하고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행 상법은 특정 법무법인이 자문계약을 체결한 상장사에서는 소속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활동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의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관리하는 기관이 없고, 위반 사례가 한 번도 적발되지 않아 해당 법률이 유명무실한 상태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우리는 사외이사를 감독할 권한이 없다.

자격요건에 문제가 있으면 주주가 해임을 요구하는 등 내부 견제장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법무부 관계자도 규정 위반이 문제가 돼 법적 분쟁이 생기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 처벌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나 국세청 등 권력기관 출신이 법률회사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사외이사로 활동할 때는 제재하기가 더욱 어렵다.

현재 로펌 소속 고문 20명(4명 중복)이 100대 기업에 일하고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고문은 법무법인에 직접 고용된 사람이 아니어서 사외이사로 활동하는데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또는 그가 소속된 법무법인이 해당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그룹 총수에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제재하는 규정이 없는 것도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있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의 총수와 특수관계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법률자문 서비스를 하면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현행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송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