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 아름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인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사흘 뒤면 벌써 백로(白露).밤 기온이 내려가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히는 절기입니다. 시인은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대문을 두드리기 전에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며 우리 마음의 대문을 먼저 두드립니다. 아,'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과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은 가을 초입.

고두현 문화부장 · 시인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