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운전자 교통지도 '유명무실'…5개월간 적발 28건…걸리면 욕설에 폭력까지
1일 오전 8시 서울 남영역 사거리.푸른색 제복을 입은 모범운전자 2명이 교통 지도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차선이 좁은 데다 꼬리물기 차량이 많은 상습정체구역이다. 이 때문에 출근시간인 오전 7~9시엔 매일 모범운전자들이 나와 교통지도를 하고 있다.

모범운전자연합회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8000여명의 회원이 출근 시간에 교차로 등에서 경찰공무원을 보조해 교통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시내 모든 교차로에 교통경찰이 나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다. 모범운전자연합회엔 사업용 자동차 운전에 종사하는 무사고 운전자로,10년 이상 무사고를 인정받은 택시기사들만 가입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 5조에 따르면 운전자들은 경찰공무원을 보조하는 사람의 신호 · 지시를 따를 의무가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날 남영역 사거리에선 모범운전자의 신호 지시를 무시하는 차들을 수시로 목격할 수 있었다. 어떤 차량은 모범운전자의 지시를 무시하고 달리다 사고를 낼 뻔하는 등 아찔한 광경도 목격됐다.

일부 운전자들은 모범운전자들의 신호 · 지시에 따르지 않을 뿐 아니라 욕설을 하거나 차로 밀어붙이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모범운전자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모범운전자들이 교통지도 중 겪은 폭행,욕설 등 인권침해 건수만 5329건에 달했다. 이에 따라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3월1일부터 모범운전자의 신호 · 지시에 불응한 운전자에게 6만원(승용차 기준)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3월부터 8월까지 모범운전자 지시에 불응했다가 적발된 건수는 28건에 불과했다. 서울에서 교통단속 적발 차량이 월 평균 7만5000여건 수준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치다. 김호영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안전 경정은 "모범운전자들은 교통단속 권한이 없기 때문에 차들이 지시를 거부하더라도 모범운전자들이 직접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한 적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들이 신호 · 지시를 무시하는 차량 번호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경찰에 신고해야만 적발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정응교 서울모범운전자연합회 사무국장은 "범칙금을 부과키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운전자들이 모범운전자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 등 현장에선 거의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모범운전자의 신호 · 지시에 불응한 운전자에게 범칙금을 부과하겠다는 경찰청의 결정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 사무국장은 "경찰은 범칙금을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던 3월에만 반짝 홍보를 했었다"며 "운전면허 필기시험에 관련 문제를 출제하는 등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속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상습정체 구역에선 모범운전자들에게 경찰과 비슷한 복장을 입히는 등의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경민/김우섭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