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한 달을 튀니지에 머물렀지만 생활은 리비아인들과 같이했다. 150만명의 리비아인들이 튀니지에 피난해 왔기 때문에 호텔은 리비아인들로 북적거렸고,매일 그들과 리비아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들은 난민이었지만 부유하고 여유로웠고,전쟁 중이었지만 왕래가 자유로웠다. 미국의 중앙정보국(CIA) 및 각국 정보기관도 튀니지에 거점을 두고 움직였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주도한 리비아 내전에서 카다피 정권이 마침내 붕괴함에 따라 리비아 시민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새 정부 수립을 공식 선언했으며,주한 리비아 경제협력대표부는 녹색기를 내리고 삼색기를 게양했다. 현재 아랍연맹(AL)은 NTC를 합법정부로 인정하고 회원국 자격을 회복시켰으나,아프리카연합(AU)은 아직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NTC의 무스타파 압둘 잘릴 위원장과 마흐무드 지브릴 총리가 트리폴리에서 정권을 인수한 뒤 국가재건 과정에서 미국 중심의 NATO 개입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리비아 자원 개발과 전략적 기회를 활용하려는 각국 정보기관의 계획이 확고한 데다,140여개 부족이 난립하고 있는 리비아는 언제든 정치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리비아는 단기적으로 제2의 이라크처럼 부족 간 테러가 늘어날 수 있으며,장기적으론 제도권 안에 묶여 있던 이슬람 원리주의 기반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알 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 세력의 온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무아마르 카다피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NATO 군은 카다피의 고향인 중부 도시 시르테의 주요 시설을 폭격하면서 시민군이 진격하고 있다. 카다피가 이미 리비아를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CIA는 이라크의 후세인 식 결말을 요구하기 때문에 카다피 측은 끝까지 투항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작전에서 최대 이권은 미국이 얻었다. 첫째, 리비아의 유전에 대한 지배권이다. 미국에 리비아 통제는 석유 및 가스송유관을 포함해 아프리카,걸프아랍,중앙아시아지역에 매장된 석유,천연가스에 대한 지배 및 기업소유권 확보 전략을 위한 미국의 중장기 에너지 패권띠를 연결하는 주요 고리다. 둘째, 리비아에서 군사 작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북아프리카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했다.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의 경쟁국은 러시아와 프랑스였지만,리비아 작전에서는 중국이다. 셋째, 미국 패권의 핵심 기둥인 달러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데,적은 비용으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 작전이었다.

리비아 원유생산이 정상을 회복하더라도 국제유가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리비아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프랑스,독일,이탈리아 정도다. 따라서 리비아 사태가 안정돼도 장기적으로 원유가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석유는 고갈성 자원일 뿐 아니라 투기 자금과 연계된 패권세력은 유가 조작에 필요한 또 다른 요인을 언제든 찾아내게 될 것이다.

리비아 재건에 유엔이나 AL,AU 등이 표면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지만 NATO 중심의 미국,영국,프랑스가 실질적으로 전리품을 챙기게 되는 상황이다. 우리 기업들 역시 리비아 석유개발 및 복구사업에 적극 참여하기 위해,국토해양부의 긴급 대책회의를 통해 리비아 전달 성금을 모금하는 등 관심이 크다.

불확실한 리비아 사태에 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중동 전문 상설 태스크포스 팀 가동을 통한 장기 전략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다원화한 정치 및 경제 환경이 예상되므로 다양하고 섬세한 외교 및 진출 전략이 중요한데,특히 포괄적 전략보다는 쌍무적 동반자 관계 구축과 맞춤형 외교전략이 필요하다. 세부적으로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외교적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문화원 설치 등을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기금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기업도 로비가 아닌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로 경쟁력을 갖춘 플랜트 수주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김중관 < 동국대 중동경제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