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남편과 싸운 여성 임원 얘기 듣더니…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여성 임원들의 고충을 듣는 한편 여성도 최고경영자(CEO)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3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12시께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42층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계열사 여성임원 7명과 함께 오찬을 가졌다. 이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여성들은 유연하고 능력도 있다"며 "경쟁에서 질 이유도 없고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성 임원들이 사장까지 돼야 한다"며 "임원은 자기의 역량과 뜻을 다 펼칠 수 없지만 사장이 돼면 이런 것들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에서 여성 사장은 호텔신라 CEO와 삼성에버랜드 사장을 맡고 있는 이부진 사장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계열사를 통틀어 여성 사장을 배출한 적이 없다. 계열사 전체 20여만명 임직원 가운데 상무급 이상 임원 1800명 중 여성임원은 34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삼성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이번 발언을 계기로 올해 연말 정기인사에서 여성 인력이 대거 승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은 이와 관련해 "여성 사장 승진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겠다"면서도 "현재 부장급 여성 간부가 많기 때문에 당장 올해 여성 임원 승진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이날 오찬에는 최인아 제일기획 부사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심수옥 전무, 이영희 전무, 조은정 상무, SDI 김유미 전무, 삼성SDS 윤심 상무, 삼성증권 이재경 상무 등이 참석했다.

한 여성 임원은 "남편과 잘 지내다가도 종종 싸우곤 한다"며 "아무리 회사에서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을 해도 집에 가면 남편이나 자녀들은 이런 점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여성 임원은 "직장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 등의 시기를 지나는데 이 때를 잘 넘기도록 동료들이 도와줘야 한다"며 "그룹에서 시행하고 있는 자유출근제나 재택근무제 등이 도움이 되지만 이보다도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임원이 부족한 사회 현실 속에서 마땅한 롤모델을 찾기 어려워 남자 선배에게 멘토를 부탁하기도 했다"고 얘기한 여성 임원도 있었다.

이 회장은 임원들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난 뒤 "다들 솔직하고 조리있게 얘기해줘서 좋았다"며 "여러분들의 얘기를 들으니 어려움 속에서도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라 생각된다"고 격려했다.

한경닷컴 권민경 기자 k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