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문을 연 프랑스 국립 미테랑 도서관은 출범 초기 뜻하지 않은 고민에 빠졌다. 장방형 건물 내부의 거대한 정원에 매일 수십 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와 추락사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성령의 상징으로 인식되는 비둘기의 떼죽음은 가톨릭을 신봉하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정원으로 향한 건물 안쪽의 거대한 전면창이 문제였다. 이 창문이 정원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반사하면서 새들의 착시를 유도한 것이다. 유리 위에 반사된 나무 위에 꿈틀대는 벌레를 잡으려 전력 질주하다 전면창과 충돌했다.

결국 도서관 측은 조류학자의 자문까지 받은 끝에 2001년 비둘기보다 더 큰 새의 형상을 스티커로 제작해 전면창 곳곳에 붙이는 조치를 취했다. 의외의 처방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낯선 조류의 형상에 겁먹은 비둘기들이 더 이상 전면창 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로 비둘기의 줄초상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기만 하면 그 시력 좋다는 새의 눈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면 솔거가 그린 노송 그림에 까마귀가 날아와 떨어졌다는 황룡사 벽화에 얽힌 전설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스 시대에는 이렇게 대상의 사실적인 재현을 아름다움의 중요한 척도로 인식했고 이에 따라 화가들도 평면에 3차원의 입체공간을 재현하는 '환영적 재현' 능력을 갈고닦아 저마다 솜씨를 뽐냈다. 그중 제욱시스와 파라시우스는 자타가 공인하는 화단의 라이벌로 서로 자신이 최고라고 목청을 높였다. 결국 둘은 영광의 월계관을 놓고 진검승부를 펼치게 되는데 이 사실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먼저 제욱시스가 커튼을 젖혀 포도송이를 그린 자신의 그림을 파라시우스에게 보였는데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새들이 날아와 진짜 포도인 줄 알고 그림을 쪼아댔다고 한다. 잔뜩 고무돼 우쭐해진 제욱시스를 파라시우스가 자신의 아틀리에로 안내했다.

제욱시스는 파라시우스의 화실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그림에 드리워진 커튼을 젖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아뿔싸! 커튼은 그림의 일부였다. 제욱시스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었다. 패배를 시인한 후 제욱시스는 "나는 새를 속였을 뿐인데 파라시우스는 나를 속였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사실 두 사람의 묘사력은 우열을 가르기 힘든 것이었다. 결정적 승부처는 누가 좀 더 작품을 현실공간과 유기적으로 결합해 상대편의 착각을 유도했느냐 하는 점이었다. 1964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라캉이 이 세기의 대결과 관련해 한 세미나에서 남긴 발언은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동물은 피상적인 외형에 현혹되지만 사람은 외형 뒤에 숨겨진 의도에 속는다. " 이 신화적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말이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 미술사학 박사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