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게임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이긴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말이다. 이 같은 역설에는 어떤 심리적 기전이 숨어 있는 것일까.

가끔 어쩔 수 없이 골프장에 가보면 쓴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이렇게 자학적인 게임이 있을까. 잘하려고 애쓰면 더 안 되는 게 골프다. 조물주는 승부에서 이길 수 있도록 근육에 강한 파워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어놨는데 골프는 이를 거슬러 힘을 빼야 더 잘 칠 수 있다.

올해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가졌고 항상 우승 후보에 오르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성적이 없는 한 여자프로골퍼의 멘탈 트레이닝을 맡게 됐다. 이 골퍼는 한국에서 우승하고 미국에 진출,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싶다고 했다.

게임이 없는 기간 필자는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림을 확인하고 '골프 자체를 즐기는 마음을 가져보자'며 멘탈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그 결과 샷이 안정되면서 상위권에 오르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던 중 식사 자리에서 필자가 맥주 한 잔에 취했는지 이제 우승을 목표로 해보자며 건배로 파이팅을 외쳤다. 이후로 예선 탈락 등 성적이 부진해졌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자책감이 들었다.

승부 앞에서 힘을 뺄 수 있는 것은 '도(道)'의 수준이 아닌가 싶다. 특히 시간의 주인이 아니고 항상 제한된 시간 안에 스스로를 압박하며 사는 사람이 스트레스도 잘 받고 승부에서 밀린다. 강한 승부욕은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효율을 떨어뜨리기 십상이다. 누구든 인생에 굴곡이 있는데 승부욕만 갖고 직선적으로 돌파하려다 보면 시간에 쫓겨 스스로 감성을 압박하게 되는 자충수에 빠지게 된다.

밀려오는 인생의 파고를 등 뒤에 지고 승부욕을 갖고 뛰는 스피드 전법은 장기적으로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뒤로 돌아 밀려 오는 파도를 몸 앞에 놓고 서퍼처럼 몸에 힘을 빼고 그 파도의 고저에 몸을 맡기며 삶의 굴곡을 즐기는 것이 시간을 지배하고 승부에서 이기는 일이다.

상대방의 '나이스 샷' 을 보며 스스로 승부욕이 타오르게 하지 말고 그 다음 나올 상대방의 '오비'를 위로할 마음의 여유를 갖자.

윤대현 <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