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가 내년부터 판사를 평가하는 기준에 친절성과 성실성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만들어 지난 6월 국회를 통과했다. 법관이 피고인과 변호인에게 호칭없이 반말을 쓰고 막말을 해대는 등 무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막자는 측면에서 취지는 좋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받아든 대법원은 친절성 평가를 어떻게 계량화할지 골머리를 앓고 있고 일부 판사들은 이 기준이 판결에까지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법관은 판결문으로만 말한다는 것은 오래된 법언이다. 법관의 판결은 무엇이 법인지를 말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법관의 책임이라는 것도 법에 대한 책임이요, 이는 분쟁하는 재판 당사자들 간의 법적 평형을 만들어 내는 고도의 지적이고 이성적 작업이다. 물론 국민들이 법률서비스 소비자로서 친절한 법관을 만나면 좋기는 할 것이다. 법률과 소송 절차에 무지한 일반인들에게 한두 줄이라도 경과를 설명해주고 재판받을 권리를 옳게 행사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안내해준다면 재판정을 들락거려야 하는 답답하고 억눌린 심경들이 활짝 밝아지기도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아보지도 못하는 글씨를 써대는 의사들의 처방전을 받아들 때의 당혹감과 유사한 법정에서의 상실감을 줄여주는 효과도 낼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받는 법률 서비스의 수준이 곧바로 법관의 친절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하거나 귀착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법관이 고함을 지르고 반말을 해대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친절까지 평가하자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는 너무 멀리 나간 요구라는 생각도 갖게 된다. 유전무죄나 전관예우가 법정을 지배하는 부조리적 상황부터 개선하려는 노력이 지금은 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기본도 안돼 있는데 두세 단계를 뛰어 친절 운운한다면 실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정한 재판,충분히 재판받을 권리 등의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법관의 친절을 어떻게 계량 평가할 것인지를 대법원이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국민들은 '재판이나 제대로 하라'는 충고를 내놓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