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논현동 A성형외과에 수십억달러 자산가인 중국 B사 회장 비서실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비서는 "회장님이 얼굴에 파인 주름을 개선하려는데 내가 먼저 필러와 보톡스 시술을 받고 안전한지 확인하겠다"고 예약을 걸어놨다.

전화를 받은 코디네이터는 황당해 했지만 이 비서는 약속한 날짜에 병원을 찾아 필러 시술을 받았고,얼마 안돼 50대 중반의 C회장을 데리고 재차 나타났다. 전용기를 타고 입국했다는 C회장은 시술 전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최대한 젊어 보이게 해달라"고 호탕하게 말했다고 한다. 시술 사실을 절대 외부에 유포하지 말라고 당부한 그는 시술을 마친 뒤 엘리베이터 대신 비상계단을 이용해 병원을 빠져나갔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중국 부유층의 '통큰' 의료쇼핑 행태가 화제를 낳고 있다.

A성형외과 관계자는 "현금을 뭉텅이로 들고와서 자신이나 부인을 20대처럼 보이게 해달라는 중국 갑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1억원을 낼 테니 중국의 톱 여배우인 판빙빙처럼 만들어달라거나,머리에서 발끝까지 한꺼번에 전신성형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중국인도 간간이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부유층이나 고위관료들은 대개 5~15명 정도의 수행비서진을 대동하고 다닌다. 이들이 출동하면 성형외과 로비는 공항 입국장처럼 붐빈다. 비서들은 오너의 통역은 물론 차(茶) 심부름,재떨이 심부름,구두닦이 등을 나눠 담당한다고 한다.

중국 부유층 환자가 수술 후 얼굴에 칭칭 감은 붕대를 푸는 지루한 1주일을 어떻게 보낼까. 안면윤곽수술 전문 아이디병원 관계자는 "워커힐호텔 등 특급호텔에 묵으면서 카지노를 즐기며 소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부유층일수록 성형외과 선택도 까다롭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우정 리젠성형외과 원장은 "한국에 입국해서 3일 정도 '병원 쇼핑'한 후 시술 병원을 결정하는 중국인들이 많다"며 "만약 상담시간이 30분 이하로 짧고 성의가 좀 부족한 듯 문진해주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고 전했다.

시간에 쫓기는 중국 갑부들은 아예 중국으로 한국인 의사를 초청해 수술받는 경우도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격주로 주말을 이용,수술하러 중국을 왕래하는 한 의사는 "적게는 50%,많게는 한국보다 두세 배 높은 비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부 과시형' 중국인 성형 환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를 알선하는 에이전트도 폭리를 취하는 양상이다. 김병건 BK동양성형외과 원장은 "통상 수백만원 하는 수술비의 10~20%를 에이전트 수수료로 떼지만,최근 들어 40~50%를 요구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며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병원에 대한 악소문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