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사 소음으로 주변 거주민들이 물질적 피해가 아닌 정신적 피해를 입었더라도 공사를 맡은 시공사뿐 아니라 시행사까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물질적 피해로 인해 시행사가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준 적은 있지만,시행사에 실체가 없는 정신적 피해 책임까지 물은 것은 처음이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민사합의2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성남시 J아파트 거주민 1358명이 아파트 주변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시행사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시공사 등을 상대로 "공사 중 발생한 소음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LH 측은 본사가 각 공사의 도급인에 불과하며 시행사에 소음방지 조치 등을 요구했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환경정책기본법 제31조 1항에 따르면 사업장 등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으로 인해 피해가 생길 경우 당해 사업자는 귀책 사유가 없더라도 그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업활동에 따라 발생하는 소음도 '환경오염'으로 해석,공사를 직접 담당한 시공사뿐 아니라 발주한 시행사에도 책임을 물은 것이다. 따라서 LH 측은 건물 신축 과정에서 소음을 일으킨 대우건설과 건물 철거 과정에서 소음을 발생시킨 경기환경건설이 부담하는 배상금액에 대해 이들 업체와 연대책임을 지게 됐다.

소송을 낸 인원 규모나 배상액은 '공사장 소음' 피해 소송건 중 사상 최대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1358명 중 철거 공사 완료 전 피해 아파트에 전입한 사실을 인정받지 못한 94명을 제외한 1264명은 정신적 위자료로 1인당 15만~45만원씩 총 4억8000만여원을 받게 됐다.

법무법인 민의 윤홍배 변호사는 "그동안 '소음 피해자' 측은 공사장 소음을 직접 유발시킨 시공사만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지만,시공사뿐 아니라 시행사도 그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라며 "대단위 재건축,재개발 공사 피해에 대한 배상 기준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