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과학벨트 사업단 3분의 1로 줄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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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 건물짓듯 대거출범 '과욕'…시간 걸려도 단계별 전략 취해야
값비싼 실험실을 갖추고 연구비를 풍족하게 지원하면 과학기술발전이 이뤄질까? 과학기술의 발전과정을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연구비를 포함한 유형적 인프라는 그 자체로 과학발전을 촉진하지 못한다고 본다. 만약 그랬다면,지난 10년간 천문학적인 오일달러를 과학기술에 쏟아붓고 있는 중동의 부자 나라들이 벌써 과학기술 선진국이 됐어야 한다. 문제는 좋은 실험실과 쓰고도 남을 연구비가 주어지더라도 탁월한 연구자가 유인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설사 그런 연구자가 오더라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간 국내로 유입됐던 우수한 글로벌 인재들이 오래 버티지 못했던 많은 사례들은 결국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벨상은 시설인프라와 연구자금 못지않게 연구자가 편안히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정주 여건,네트워크 등이 함께 발전할 때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꿈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총체적인 시스템은 시간을 두고 사회와 함께 천천히 진화해 나간다.
과학벨트는 한 단계 진보한 국가를 꿈꾸는 우리의 희망 프로젝트다. 양적으로 성장해온 국가를 바야흐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번지점프대다. 지난주 열린 과학벨트 추진계획 관련 토론회에서 "20~30년 뒤를 보고 연구내용을 선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알려지고 있는 추진경과를 볼 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또 다른 국책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25개 사업단을 한꺼번에 어떻게든 출범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듯 보인다.
나눠먹기인가 아닌가 하는 진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 세계적 수준을 지향하는 기초과학의 사업단을 25개씩이나 일거에 시작하겠다는 것은 몇 가지 상식적인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첫째,기초과학 분야의 글로벌 리더급 연구자,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탁월한 신진 연구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수백명씩 채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행정 절차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세계적 수준의 사업단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도외시할 때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둘째,사업단 체제는 구성과 운영에서 지금껏 시도되지 않던 제도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결국 그 많은 사업단이 동일한 학습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과학벨트의 중요한 축인 사업단 구축의 문제를 진화하는 과학생태계 구축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수의 건물을 짓는 공사와 같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체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작은 의지에서 시작해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누적,확장,진화해 온 결과다. 과학계에서 과학벨트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다. 이즈음에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엇보다 먼저 과학생태계가 진화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갖는 것이다.
따라서 시험사업을 철저히 기획하고,그 진행 과정과 결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다음 단계로 진화시켜 나가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이 시행착오와 진화 과정을 진득하게 참고,지켜봐줄 수 있는 국가적 의지를 확고하게 천명함으로써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예산이 결부된 정부정책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흔히 내년이 없다는 전제 아래,예산이 있을 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과학계 인사도 이에 편승한다. 모두들 과학기술 체제가 사회와 함께 시간을 두고 진화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 논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초기 출범하는 사업단의 수를 3분의 1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그래야 예산 담당자들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구조적 예산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잘못된 정책으로 그나마 일부 착근돼 있는 우리 기초과학계의 뿌리가 흔들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科技정책 / 객원논설위원 >
노벨상은 시설인프라와 연구자금 못지않게 연구자가 편안히 몰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환경,정주 여건,네트워크 등이 함께 발전할 때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꿈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총체적인 시스템은 시간을 두고 사회와 함께 천천히 진화해 나간다.
과학벨트는 한 단계 진보한 국가를 꿈꾸는 우리의 희망 프로젝트다. 양적으로 성장해온 국가를 바야흐로 질적으로 성장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번지점프대다. 지난주 열린 과학벨트 추진계획 관련 토론회에서 "20~30년 뒤를 보고 연구내용을 선정해야 한다"는 주문이 쏟아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러나 최근 알려지고 있는 추진경과를 볼 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또 다른 국책사업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크다. 특히 많은 과학자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25개 사업단을 한꺼번에 어떻게든 출범시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듯 보인다.
나눠먹기인가 아닌가 하는 진부한 논의는 접어두더라도 세계적 수준을 지향하는 기초과학의 사업단을 25개씩이나 일거에 시작하겠다는 것은 몇 가지 상식적인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첫째,기초과학 분야의 글로벌 리더급 연구자,그리고 그들과 함께할 탁월한 신진 연구자들을 짧은 시간 안에 수백명씩 채용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행정 절차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세계적 수준의 사업단을 구축하겠다는 취지를 도외시할 때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둘째,사업단 체제는 구성과 운영에서 지금껏 시도되지 않던 제도를 채택하게 될 것이다. 당연히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결국 그 많은 사업단이 동일한 학습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다.
이는 결국 과학벨트의 중요한 축인 사업단 구축의 문제를 진화하는 과학생태계 구축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수의 건물을 짓는 공사와 같은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체제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작은 의지에서 시작해 수십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누적,확장,진화해 온 결과다. 과학계에서 과학벨트 사업은 단군 이래 최대의 프로젝트다. 이즈음에 우리가 염두에 둬야 할 점은 무엇보다 먼저 과학생태계가 진화하는 대상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갖는 것이다.
따라서 시험사업을 철저히 기획하고,그 진행 과정과 결과를 면밀히 모니터링해 다음 단계로 진화시켜 나가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그 다음 필요한 것이 시행착오와 진화 과정을 진득하게 참고,지켜봐줄 수 있는 국가적 의지를 확고하게 천명함으로써 정책의 지속성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예산이 결부된 정부정책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흔히 내년이 없다는 전제 아래,예산이 있을 때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일부 과학계 인사도 이에 편승한다. 모두들 과학기술 체제가 사회와 함께 시간을 두고 진화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철저히 무시한 논리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초기 출범하는 사업단의 수를 3분의 1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그래야 예산 담당자들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구조적 예산 낭비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잘못된 정책으로 그나마 일부 착근돼 있는 우리 기초과학계의 뿌리가 흔들리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
이정동 < 서울대 교수·科技정책 / 객원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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