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북한인권법 당장 제정하라
매년 광복절을 맞을 때마다 해방의 환희를 가슴에 되새기는 일 못지않게 우리 민족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하게 된다.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은 됐지만,분단이 되면서 한반도에는 이념과 가치를 달리하는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섰다. 대한민국이 민주정(民主政)을 수립해 자유와 번영의 씨앗을 뿌린 데 비해 북한은 전제정(專制政)을 수립해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로서는 이처럼 별개의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에 대한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특히 당시는 2차대전 이후 사회주의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북한은 착취와 특권이 없는 지상의 낙원을 만드는 줄 알았다. 또한 북한은 대한민국보다 출발점이 좋았다. 일제가 건설해 놓은 산업기반이 튼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가 좋은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열매를 보고 안다고 했다던가.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 법이다.

이제 광복 66년이 되면서 남북 정부의 성적표가 나왔다.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좋은 열매를 맺은 기적의 나라로,북한은 나쁜 열매를 맺은 최악의 나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런데 특히 여기서 우리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것이 북한 주민들의 참상이다. 북한의 폭정(暴政)을 피해 대한민국으로 피난 온 탈북자만 해도 2만 명이다. 또 북한에 남아 있는 부지기수의 주민들이 폭정 아래서 시름에 겨워하고 있다. 경제적으로 고단한 삶의 문제를 넘어 인간다운 삶의 모습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을 누가 도와야 하나,또 어떻게 도와야 하나. 미국인들이 도와야 하나,아니면 유럽인들이 도와야 하나. 북한 주민들을 돕는 일이야말로 민족 사랑의 진위가 달린 절체절명의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심각한 편견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돕는 것은 물질적으로 돕는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래서 쌀과 비료를 무조건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인간이란 빵만으로 사는 존재는 아니다. 품위를 갖고 사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 주민을 돕는 문제도 정신적 차원까지 포함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온전해진다.

운동선수들을 응원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라.올림픽 경기건 월드컵 축구건,우리가 선수를 응원하는 것은 정신적 응원이다. 선수들에게 이기라고 성금을 보낸다든지 금품을 주는 경우가 과연 있는가.

우리가 굳이 거리에 나가서 목이 터져라 하고 응원하는 것도 국민들이 선수들과 함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대들은 혼자 있지 않고 우리와 함께 있으니 힘을 내라"는 연대의식의 발로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정신적인 응원을 받으면 그들은 갑자기 삼손과 같은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북한 주민들이 운동선수가 아니라고 해서 경우가 다르겠는가. 그렇지 않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힌 채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우리가 함께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해주어야 한다. 이것은 쌀과 비료를 주는 일보다 중요하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눈물만 흘리고 있다. 같은 민족으로서 우리가 어찌 그들의 눈물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북한인권법이야말로 바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민족의 법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국회의 행태가 참으로 비정하고 야속하다.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북한인권법을 만들면 북한 정권과의 관계가 악화된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으니,이것이 어떻게 민족 사랑을 가진 대한민국의 국회라고 하겠는가. 영국의 의원들조차 북한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고 나서는 판국이다.

아! 늦깎이 대한민국 국회여,부디 북한 주민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닦아주는 인권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더 늦는다면,북한 주민들에게 씻지 못할 죄를 짓는 것이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