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생사와 찻잎 가격은 1878년부터 출하 때만 되면 뚝뚝 떨어졌다. 희한하게도 시중자금 경색시기와 맞물렸다. 시중 자금경색 배경에는 홍콩상하이은행이 있었다. 당시 상하이의 상업활동이 원활히 돌아가는 데는 300만냥의 돈이 필요했다. 그런데 홍콩상하이은행이 생사 출하시기에 맞춰 자금을 회수,시중자금이 100만냥을 밑돌도록 한 것.돈이 없는 상인들은 구매력을 잃었고,재배농가는 헐값으로 생사와 찻잎을 팔 수밖에 없었다. 홍콩상하이은행의 지원을 받았던 외국기업인 양행들은 이 틈에 생사와 찻잎을 매점,폭리를 취하면서 중국의 부를 빨아들였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영국 식민지 양행들의 중앙은행 격이었다.

쑹훙빙 씨의 《화폐전쟁》시리즈 세 번째 책인 《화폐전쟁3》에 나오는 내용이다. 인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력은 화폐발행권이란 저자의 생각을 함축해 읽을 수 있는 사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난 100년간 아시아 지역의 화폐 변화와 국가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본다. 미국의 화폐 역사를 분석한 1편과 유럽 금융의 변화과정을 회고한 2편과 다른 점이다.

그는 주권국가의 영역에 영토 영해 영공 등 물리적 공간 외에 금융이 추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금융 전선 즉 화폐를 장악하는 자가 국가 간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에서다. 그는 "청나라의 멸망은 군사분야에서보다 금융 방면에서 시작됐다"고 결론짓는다. 아편무역 길을 튼 영국의 전략적 목표도 청나라의 화폐시스템을 완벽하게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편전쟁은 영국의 금본위제와 중국의 은본위제 사이에서 벌어진 한바탕 전략적 결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청나라와 달리 일본은 '금융 하이 프런티어'를 방어하며 필요한 곳에 신용을 공급,빠르게 신흥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외국은행과 일본상인들의 직접적인 접촉을 불허했고,독자적인 금융망을 구축했으며,메이지유신 이후부터 청일전쟁 발발 전까지 외채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에 대한 관심도 이 책 내용의 한 축이다. 그는 과거 중국의 은본위제와 서구의 금본위제 싸움에서 중국이 졌고,2008년까지도 값비싼 은 수출 대금으로 값싼 미 달러화를 받은 것은 중국의 과오라며 은에 대한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