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정강(政綱)의 기초가 될 새로운 비전에 기존 자유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따뜻한 시장경제주의 △조화와 통합의 공동체주의도 추가하기로 했다. 이는 독일 등 유럽식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여서 향후 한나라당의 이념적 지향점이 '유럽식 복지 모델'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선진복지국가'라는 제목의 새 비전을 19일 발표했다. 나성린 여의도연구소 비전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지 않는 중도좌파까지 포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뜻이다.

◆복지 지출,GDP의 20%로

복지에 가장 큰 초점을 뒀다.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달성하고 사회복지 지출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20%까지 높이겠다고 했다. 현재는 9% 수준이다. 나 위원장은 "민주당의 무상복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성장 우선이던 여당의 정책 기조가 복지 확대를 통한 분배 강화로 전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새 비전은 10개 핵심 과제 중 4개가 복지에 관한 것이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0~5세 영유아의 보육 및 교육을 국가가 완전히 책임지는 정책을 내놨다. 고교까지 의무교육을 확대하기로 했다. 대학등록금 부담 완화와 관련,앞으로 5년 안에 고등교육재정을 OECD 평균까지 확대하고 등록금을 30%까지 내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농어촌은 완전 무상,도시지역은 소득 수준 하위 70%까지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56% 수준인 고용률도 60%로 올리기로 했다.

◆감세 사실상 폐지

여의도연구소는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현재 GDP의 5.6%인 사회보장부담률을 10%로 높이고 조세부담률도 20%에서 25%로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 기조인 '감세'를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각종 비과세 혜택을 종료하고 부가가치세,담뱃세,주세,소득세,법인세,지방소비세,레저세 등의 요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뉴 비전 자료집에는 "시장경제 원리를 중시하면서도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돼 있다. 뉴 비전은 앞으로 당 정책의 큰 줄기인 정강과 각종 선거 공약에 반영된다. 때문에 한나라당의 이 같은 정책 변화는 자칫 시장원리를 침해하고 '큰 정부'로 귀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당장 당내에서 비판이 나온다. 이한구 의원은 "감세와 작은 정부가 보수의 가치인데 내용만 보면 증세와 큰 정부가 보인다"며 "등록금 인하를 위해 교부금까지 만든다는데 보수 정당이 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참 희한하다"고 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