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인원의 3분의 1을 고졸자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미 기업은행이 고졸 사원을 공채했고 하반기에는 더 뽑을 계획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고졸 은행원들이 크게 늘어날 게 틀림없다. 이들은 주로 2년 계약직인 일선 창구직원(텔러)으로 배치될 것으로 보이지만,처음부터 정규직으로도 채용이 가능하고 임금도 같은 직급의 대졸자와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학력 차별을 없애겠다는 기업 고용정책의 선도적 변화로 기대가 크다.

은행에 들어간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창구업무 자체는 특별한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국내 은행들이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는 고졸 직원을 상당수 채용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처럼 고졸자들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좁아지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가 결정적인 원인이다. 대학 · 대학원 졸업자들이 매년 31만명 넘게 쏟아지면서 고졸자 일자리를 잠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한국은행만 해도 과거 상고 출신 사원들이 거뜬히 처리했던 일을 지금은 대졸사원들이 맡고 있다.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지난해 79%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지만 취업률은 46.0%에 불과했다. 대학원 졸업자까지 합쳐도 47.6%에 그친다. 지난해 15세 이상 인구 전체의 고용률이 58.7%에 달하고 있는 것에도 한참 못미친다. 더욱이 사회적 비용은 점점 커져만 간다. 다들 대학으로 몰리다 보니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이 늦어져 경제활동 참가율은 60%를 간신히 웃도는 실정이다. 학력 사회의 감옥이며 지연 혈연 학연 등 낡은 집단 증후군의 핵심이 바로 비정상적인 대학 입학률이다.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마이스터고나 특성화 고교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는데도 대학에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비능률이며 사회적 손실의 극대화요 개인과 가계의 고통일 뿐이다. 이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대우가 철폐되는 계기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