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배당ㆍ편법 세금회피ㆍ과다 로열티..기부엔 `인색'
"한국사회 일원이라는 의식 가져야"

`먹튀'로밖에 볼 수 없는 일부 외국계 기업과 금융기관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고액 배당과 수익 해외유출 등을 통해 한국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의 이익을 가져가면서, 세금이나 기부 등 사회공헌은 철저히 외면하는 모습이 비난을 불러온 것.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면 당연히 그 수익의 일부를 한국 사회에 돌려주려는 책임 있는 사회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엔 돈 한푼 남길 수 없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론스타가 고액의 중간배당으로 4천969억원을 챙기면서 외환은행은 껍데기만 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론스타가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후 받아간 배당액은 무려 1조7천억원이 넘는다.

외환은행의 시장점유율과 대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나 몰라라' 한 결과다.

순익 중 배당으로 챙겨간 비율이 45%에 달한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금융당국은 30% 이상의 배당은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먹튀' 논란은 외환은행만이 아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올해 27개 지점을 폐쇄한 SC제일은행은 올해 영국 본사에 1천억원의 배당을 송금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태다.

노조는 훨씬 많은 돈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은행은 `메탈론'이라는 불법대출의 수익금을 몰래 영국 본사로 보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BAT코리아의 행태는 한국에 수익 한푼 남길 수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서민들은 물가급등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BAT코리아는 실적 악화를 이유로 최근 `던힐' 등의 담뱃값을 200원씩 인상했다.

지난해 대규모 영업손실을 냈다는 것. 그런데 이는 교묘한 `삼각 거래'의 결과였다.

경남 사천공장에서 만들어진 담배는 BAT코리아로 바로 팔리지 않고 네덜란드의 회사를 거친다.

사천공장은 네덜란드 회사에 담배를 2천300억원에 판다.

그런데 BAT코리아는 이 회사에서 담배를 5천800억원에 산다.

한마디로 네덜란드 회사가 담배를 싸게 산 후 비싸게 팔아 수익의 대부분을 챙겨간다.

결과는 세금으로 나타난다.

BAT코리아는 지난해 46억원의 법인세를 냈다.

한국시장 점유율이 비슷한 필립모리스의 10분의 1 수준이다.

수년 전 국세청은 세금을 더 매기려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나머지 순이익마저도 한국에 그냥 놔두지 않았다.

122억원 순이익은 모두 배당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 결제 네트워크를 제공해 주고 로열티를 받는 국제 브랜드사도 수익 빼가기에만 몰두하기는 마찬가지다.

외환위기 이후 신용카드 사용액이 급증하면서 비자, 마스터 등에 우리나라 카드회사와 소비자들이 최근 10년간 지급한 `카드 로열티'는 무려 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최근 비씨카드가 소비자의 수수료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비자가 아닌 다른 외국회사와 제휴하자 비자카드는 계약 위반이라며 대규모 벌금을 물렸다.

더구나 사건의 공동 당사자인 중국 측에는 부과하지 않아 국가 간 차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회공헌ㆍ기부는 `쥐꼬리'..금융 공적기능도 외면

문제는 수익의 해외 유출만이 아니다.

외국계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기부나 사회공헌은 인색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담배 제조기업은 국민의 건강을 해친다는 비판으로 인해 통상 어느 나라에서나 복지나 사회시설 등에 많은 기부를 한다.

국내 기업인 KT&G의 지난해 사회공헌금액은 600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BAT코리아의 지난해 기부금은 고작 3억여원에 불과하다.

한국필립모리스는 한술 더떠 아예 한푼도 없다.

필립모리스의 지난해 순이익은 1천억원에 육박했다.

루이비통, 구찌 등 명품 가방 하나에 1천만원이 넘는 제품을 파는 기업들은 지난해 고작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순이익이 수천억원에서 1조원 이상에 이르는 외국계 은행의 기부도 초라하기는 마찬가지다.

론스타가 중간배당으로 5천억원 가량을 챙겨간 외환은행은 지난해 사회공헌으로 지출한 돈이 213억원에 불과하다.

지방은행인 부산은행의 272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씨티은행은 79억원으로 시중은행 중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외국계 생명보험사들은 업계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회공헌재단에 참여하지 않아 눈총을 받고 있다.

희귀질환자, 치매노인, 미숙아 등을 돕는 뜻깊은 일이지만 ING, AIA, 에이스생명 등 외국계 생보사들은 참여를 미루고 있다.

자체 사회공헌을 한다고 하지만 업계의 눈길은 싸늘하기만 하다.

더욱 큰 문제는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금융의 공적인 기능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금융당국이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시중은행에 주택담보대출의 금리를 낮춰줄 것을 요청했을 때 일부 외국계 은행은 이를 외면했다.

대출도 안전한 가계대출만 늘리면서 중소기업 대출에는 인색하기만 한 모습이다.

올해 들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배드뱅크가 출범할 때도 외환, SC제일, 씨티, HSBC은행 등 외국계 은행은 모두 빠졌다.

이들의 논리는 단순하다.

"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고, PF 부실이 적으니 배드뱅크에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생계를 좌우하는 돈줄을 쥔 은행이 수익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감독당국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은행이 위기에 빠지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그만큼 은행의 공적 기능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며 "어려울 때는 국민 세금을 원하면서 고통 분담은 원치 않는 모습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일은행은 외환위기 후 극심한 경영난을 겪다가 1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정상화의 길을 걸었다.

이중 5조원은 아직도 회수하지 못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홍성준 사무국장은 "우리가 외자유치만을 중시한 나머지 외국자본에 너무나 관대한 모습만을 보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국내에 들어온 외국기업이 수익성만을 추구하며 공익 기능이나 기부 등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국에서 수익을 창출한다면 그 구성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 또한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안승섭 기자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