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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화 명작기행] 오래된 컬러사진을 보는 듯…프랑스 '차도남' 이집트에 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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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 레옹 제롬의 '테베의 평원 풍경'

    1798년 나폴레옹 원정 이후 유럽에 뿌리내린 오리엔탈리즘

    아랍에 열광했던 장 레옹 제롬, 배 한 척 빌려 나일강 곳곳 편력
    "유럽선 볼 수 없는 모노톤의 풍광"

    우아한 자태의 날렵한 말이 끄는 마차 대신 꾸부정한 자세에 느려터진 낙타가 최고의 교통수단으로 통하는 곳,기다란 바게트 대신 빈대떡처럼 납작한 에이쉬(인도의 '난'처럼 생긴 이집트 전통 빵)를 먹는 곳,뚜렷한 이목구비에 구릿빛 피부를 한 호리호리한 체격의 남자들,검정색 차도르로 얼굴과 몸을 칭칭 감고 다니는 여자들,뜨거운 태양과 거센 모래바람이 사람들의 피부를 코끼리 발바닥처럼 거칠게 만드는 건조한 기후,삭막한 평원 위에 이따금 모습을 드러내는 거대한 조각상이 묘한 상념을 불러일으키는 곳.

    1857년 이집트에 첫발을 디딘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1824~1904)의 눈에 이 열사의 나라는 도무지 자신의 고국인 프랑스와 무엇 하나 같은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로 인한 이질감은 젊은 화가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하나 같이 그의 낭만적 감수성을 자극하곤 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세상에는 현세의 바다를 건너는 또 다른 방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데서 무한한 희열을 느꼈다. 그것은 사막의 나라에서 발견한 창작의 오아시스였다. 장 레옹 제롬의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그렇게 탄생했다.

    사실 유럽의 동방에 대한 관심의 역사는 매우 오래됐다. 이미 로마시대부터 중국을 비롯한 동양 문화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르네상스시대에는 아라비아 및 힌두 문화가 서구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어디까지나 낭만적 호사가들의 이국적 취미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이었다.

    동방에 대한 관심이 서구문화에 뿌리 깊은 영향을 미치고 하나의 문화현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이었다. 이탈리아 원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폴레옹은 1798년 영국의 영향권에 있던 이집트를 공격했는데 이때 그가 대동하고 간 학자들에 의해 서구 근대 이집트학의 기초가 마련됐던 것이다.

    이렇게 동방,특히 아랍세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형성된 예술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한다. 이때까지 외래의 영향을 뜻하는 용어가 '튀르크리(터키풍,터키 취미)''시누아즈리(중국 취미)'처럼 단순한 이국취미를 뜻했던 데 비해 이때의 아랍문화에 대한 관심을 뜻하는 말은 '오리엔탈리즘(동양주의)'라고 해 일종의 사조(思潮)를 의미하는 한 단계 격상된 용어로 명명된 것은 그 영향의 강도와 범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음을 말해준다.

    19세기 초 아랍문화에 대한 열광은 화가들의 창작 태도마저 바꿔놓았다. 발달된 교통수단을 바탕으로 화가들은 아라비아 지역을 직접 여행하면서 이국의 문화를 체험했다. 종전의 이국취미에 토대를 둔 그림이 부정확하고 과장된 정보를 바탕으로 상상의 날개를 편 것이라면 오리엔탈리즘 회화는 화가 자신이 현지에서 직접 목격한 진정성 있는 체험의 결과였던 것이다.

    하지만 제국주의가 만연하던 이 시기의 오리엔탈리즘 계열 작품 속에는 서구의 인종 · 문화적 우월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제국주의의 우산 속에서 자라난 대부분 화가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잣대를 멋대로 휘두르며 동방의 문화를 서슴지 않고 재단했다.

    일부다처제를 경멸했던 서구 화가들은 처첩의 생활공간인 하렘의 풍경을 단골 소재로 삼아 이 문화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런 삐딱한 시선 속에서 아라비아의 낭만적 세계는 점차 마초가 지배하는 성적 판타지의 세계로 굴절돼갔다.

    이집트에서 촉발된 화가들의 관심은 점차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일원과 레판트로 불렸던 시리아 레바논까지 망라하는 전 아랍세계로 확대됐다. 특히 프랑스 화가들의 아라비아 문화에 대한 관심은 유난스러웠는데 그 중에서도 장 레옹 제롬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아라비아 문화의 열광적인 숭배자였다.

    첫 이집트 여행 이후 아라비아 세계는 그에게 마르지 않는 창작의 샘이 됐다. 1857년 그린 '테베의 평원 풍경'은 그가 거둔 첫 수확물이다. 그해 그는 친구들과 함께 배 한 척을 빌려 테베를 비롯한 나일강 중 · 상류의 이집트 고대 도시들을 편력했다. 이 작품은 그때의 스케치를 토대로 그린 것이다. 테베는 현재의 룩소르 지역으로 상왕국시대의 수도였는데 아몬 신 숭배의 중심지로 크게 번창했다.

    그림 속에는 그가 처음 맞닥뜨렸던 이집트의 이국적인 풍경이 압축돼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평원 한가운데로 카라반이 낙타 무리를 몰며 길을 재촉하고 있고 그들 오른쪽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거대한 파라오 좌상이 자신들의 영토를 바라보고 있다. 그 뒤로 보이는 야트막한 산맥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가려 희미한 실루엣만을 드러내고 있다.

    전경의 주춧돌에 드리워진 짧은 그림자로 보아 시각은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 어름이 분명하다. 아마도 화가는 따가운 햇살 아래 굵은 땀을 쏟으며 이 낯선 풍경을 스케치했으리라.갈색 톤이 주조를 이루는 화면에는 전체적으로 미세하게 붉은 기운이 주입돼 있다.

    화려한 컬러를 뿜어대는 서유럽의 풍경과는 사뭇 다른 이 모노톤의 풍경은 마치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퇴색해버린 컬러사진과 같다. 그 공간적 낯섦,시간적 격리감이 자아내는 이질적 풍경은 타성에 젖은 예술혼을 각성시킨다. 바로 장 레옹 제롬이 아라비아 세계에 열광했던 이유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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