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소설 '오늘 예보'서 위트와 풍자 재능 과시
차인표 "독자와의 만남, 묘한 스릴 있어"
궁금했다.

인기 배우인 그는 왜 소설을 쓸까.

유명세에 기댄 취미생활일까.

그리고 책을 읽고 놀랐다.

스토리의 구성력과 위트가 넘치는 문장, 날카로운 풍자에서 필자의 재능과 정성, 노력이 느껴졌다.

가벼운 글재주에 기댄 습작이 아니었다.

더불어 메시지에서는 따뜻한 진심이 배어났다.

그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는데 불가능해 보이지도 않았다.

최근 두 번째 소설 '오늘 예보'를 낸 차인표(44)를 만났다.

"올해로 연기생활 18년입니다. 연기를 하며 먹고 살게 됐으니 정말 감사하죠.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늘 다른 사람이 창작한 것을 표현하다보니 나도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됐어요. 내가 쓰면 어떨까 싶었죠."

2009년 첫 번째 소설 '잘가요 언덕'을 낸 그는 "그전까지는 연예인으로서 대중을 상대했다면 책을 내고 나서는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독자들과 만나는 데엔 묘한 스릴이 있다. 계속해서 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이날도 변함없이 친절한 신사였으며 겸손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자꾸 저자와 책의 내용을 비교하게됐다.

'오늘 예보'의 스토리와 캐릭터, 어휘, 대사가 그만큼 작가의 모습과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예보'는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세 남자의 이야기다.

부유하고 온화하게 성장해 밑바닥 인생은 전혀 모를 것 같은 차인표가 세 남자의 처지를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도 놀라운 데다, 직설적이고 코믹하며 삶의 체취가 묻어나는 생생한 에피소드와 대사가 시종 폭소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차인표 "독자와의 만남, 묘한 스릴 있어"
하긴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 가발을 뒤집어쓰고 나와 '쉬즈 곤'을 열정적으로 모창하며 웃음을 준 그다.

"아내(신애라)는 내가 웃긴다고 한다"며 웃은 차인표는 "사실 처음에는 책의 내용이 많이 무거웠다. 그러나 시나리오로 쓸 계획을 바꿔 소설로 내기로 하면서 청소년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생각에 내용을 많이 순화했고 최대한 웃기게 하려고 노력했다"며 "사람들이 보고 웃으면서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키가 유독 작았던 '나고단'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겪은 '민주적 짝짓기'에 대한 트라우마와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쫌만더'라는 이름의 나이트클럽 웨이터로 10년을 일하며 겪은 일들, 연이은 사업 실패로 노숙자로 전락한뒤 무료급식현상에서 첫사랑과 맞닥뜨린 이야기 등은 감탄을 자아낼만큼 생생하고 흥미로워 단숨에 읽힌다.

"인터넷에 잘못된 정보가 많잖아요? 저도 주머니에 300원밖에 없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 시간들을 굳이 말하지 않을 뿐이죠. 초등학교 1학년때 입에 버즘이 나 파란색 약을 칠하고 다녔는데 그때 애들이 절 지저분하다고 싫어했던 경험, 무료급식현장과 소아암병동에 봉사활동을 하러 나갔던 경험과 예비군훈련 때 만난 나이트클럽 웨이터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등 직,간접 경험을 많이 녹여넣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당 4만 원짜리 드라마 보조출연자로 살아가는 '이보출'의 이야기는 저자의 실제 직업과 오버랩되며 '이보다 사실적일 수 없는' 재미를 준다.

사극 촬영현장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거기서 만나는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위트 넘치는 묘사는 큰 웃음을 주는 동시에 사람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배우 차인표는 촬영현장에서 대접받는 주연배우지만 단역배우에게 시선을 돌려 그들의 삶에 진정어린 관심을 표한 것이다.

"KBS '명가'를 촬영할 때 기온이 영하 24도였어요. 현장에 가면 너무 추워서 아무 생각이 안 들었죠. 그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현장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서로 의지하며 촬영을 한거죠. 그러다 보니 한 분 한 분에게 시선이 가게됐고 '저분은 점심에 뭘 먹었을까' '저분은 왜 이 일을 할까' 등의 궁금증이 생기게 됐죠."

낄낄거리는 웃음 밑에 진한 페이소스를 깔아놓은 '오늘 예보'는 '죽어라 죽어라'하던 세 주인공이 보이지 않는 인연의 끈 속에서 서로에게 구원이 되는 희망적인 결말을 내놓는다.

더불어 자살을 시도했던 나고단의 인생은 20년 뒤 전혀 다르게 바뀌어있다.

솔직히 잘 나가다 어쩔 수 없이 판타지로 귀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단호했다.

"저희 증조할아버지 산소에 가면 비석이 있는데 저와 제 형제들까지 100명 정도의 후손들 이름이 써있어요. 증조할아버지는 평생 가난하게 산 빈농이셨어요. 만일 그분이 너무 힘들어 자살을 선택하셨다면 제가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삶이 고귀한 것은 많은 열매를 맺을 씨앗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삶을 포기한다는 것은 먼 미래 수많은 생명과 그들이 사랑할 시간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오늘 죽고 싶어도 오늘만 넘기면 내일 또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죽어라 죽어라'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하는 것은 내 목숨이 나만의 것이 아니며 무게로 달 수 없을 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차인표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자살하는 사람이 1만 5천 명이다. 이 정도면 나라 전체가 전쟁 중인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혼자만 살겠다고 해서 벌어지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전 제가 지쳐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어도 '힘내세요'라고 해주면 진짜 힘이 될 것 같아요. 따뜻한 응원 한마디, 관심 하나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세상을 바꿉니다. 이 책을 통해 인생이라는 달리기에서 혼자 치고 나갈 생각만 하지 말고 쓰러진 사람들에게 손도 내밀고 응원도 해주며 살자고 전하고 싶습니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