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방송사업자들의 공정한 경쟁 또는 시청자의 이익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우려가 있는 특정 유형의 행위를 금지하는 경제적 규제 조항의 신설이다. 지금까지 방송법은 사회 · 문화적 규제 중심이었다. 현행 방송법은 공익성,공공성,공정성,다양성,독립성 등과 같은 전통적인 방송 이념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방송 시장에서 사업자 간 경쟁이 심화되면서 불공정한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에,방송법에 공정경쟁을 위한 경제적 규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2003년부터 추진해 오다 무산된 사안이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방송과 통신 시장에서 불공정 행위 규제와 관련해 현행 법 체계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통신 사업자의 경우에는 전기통신사업법에 금지행위를 규정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한다. 인터넷TV(IPTV)의 경우에도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에 금지행위 규정을 두고 역시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하고 있다. 이에 비해 방송 사업자의 경우 방송법에 금지행위와 관련된 규정이 전혀 없어 대조적이다. 지금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의해 방송 사업자들의 금지행위를 규제해 왔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있는 시점에,통신사업자의 불공정행위는 방송통신위원회가,방송사업자의 불공정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하는 것은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 유사 방송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케이블TV,위성방송,이동멀티미디어방송(DMB) 등과 같은 방송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규제하지만,IPTV 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하는 비대칭 규제의 모순도 이른 시일 내에 개선돼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업자들의 불공정 행위를 두고 일반 경쟁규제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와 전문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 간에 관할권을 둔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심결제도를 통해,방송통신위원회는 분쟁조정 제도나 시청자불만처리 제도를 통해 불공정 행위들을 규제해 왔다. 이번 개정법안 입법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두 기관은 팽팽하게 대립했다. 게다가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한국소비자원도 소비자분쟁조정 제도를 운영하면서 다기화된 규제 체계가 존재하는 데서 오는 중복규제의 가능성도 높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방송법 개정안에서는 방송사업자들의 금지행위들을 명시하고,전문 규제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담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나 영국의 커뮤니케이션청(OFCOM) 등과 같은 전문 규제기관이 방송 · 통신사업자들의 공정경쟁 규제를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바람직한 방향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출범한 지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방송통신 융합에 대비한 법제 정비가 매우 미흡하다. 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제정됐으나 실효성은 별로 없고,보다 중요한 후속법인 방송통신사업법(가칭) 제정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는 추진 의지가 약하다. 국회도 전혀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법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방송법상의 방송사업자와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상의 IPTV 사업자에 대한 경제적 규제의 차별성이 일부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방송법상 방송사업자와 전기통신사업법상 통신사업자 간의 비대칭 규제도 다소 균형성을 취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방송통신사업법 제정을 위해 관련법들을 사전에 정비함으로써,방송통신 통합법 제정이 훨씬 쉬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 통과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상식 < 계명대 교수·신문방송학/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