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혼란만 부추기는 노조법 재개정
노조법 재개정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치권에서 '생 쇼'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타임오프(노조전임자 유급 근로시간면제)제도가 시행된 데 이어,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조치의 시행이 내달 1일로 다가오면서 난데없는 '노조법 재개정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노 · 사 · 정 3자의 합의정신으로 만들어진 제도인데도 한국노총은 지도부가 교체된 지난 2월 이후 "노조법은 잘못 태어난 법"이라며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노동계의 환심을 사려는 여당과 야당 역시 노조법 재개정안을 앞다퉈 발의하는 등 난리법석이다. 체면도,명분도,논리도 없이 오로지 당리당략과 조직이기주의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노동계가 복수노조와 타임오프를 반대하는 것은 일부 노조간부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전략적 접근,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치권 역시 제도의 옳고 그름보다는 노동계의 표(票)만을 의식하고 있다.

그동안 양대 노총으로부터 '왕따'를 당해왔던 민주당은 노조법 재개정을 노동계의 표밭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삼는 듯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나라당은 한국노총과 정책연대를 해왔고,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를 파기하고 민주당에 손을 뻗치자 낼름 손을 잡은 것이다.

다급해진 한나라당에서는 '중도개혁'을 내세운 초 · 재선 의원 50명이 노조법 재개정안을 발의했다. "개혁세력이란 게 이 정도냐"는 비판이 거세지자 "동료 의원이 발의한다고 해서 품앗이 차원에서 서명을 해준 것"이라는 의원들의 해명이 잇따랐다. 사실 한나라당이 이명박 정부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히는 노조법 개정을 다시 원위치로 돌리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은 많다. 노조법 재개정 발의는 노동계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성의 표시'란 분석이다.

노조법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노사관계에 도움이 된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타임오프는 전체 사업장의 90%가 도입할 정도로 어느 정도 정착돼 가고 있다. 전임자 수가 많기로 유명한 기아자동차 노조의 경우 기존 전임자 234명이 91명으로 줄어들었다. 타임오프 대상 21명과 조합원들이 임금을 지급하는 무급 전임자 70명을 합한 숫자다. 무급 전임자 임금에 대한 편법지원 논란도 있지만,아무튼 절반 이하로 감소한 것이다.

노동계가 강력히 주장하는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임금 지원은 노동계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대목이다. 전 세계 노조 가운데 파견 전임자에 대한 임금을 회사 측에서 지원하는 경우는 한 곳도 없다. 우리나라 노조만 유독 '노동 탄압' 운운하면서 '원위치'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상급단체 파견 전임자 수는 220여명이다. 전임자 평균연봉을 5000만원으로 잡으면 연 110억원이 소요된다.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이 138만명으로 1명당 8000원씩만 내면 해결할 수 있다.

복수노조도 마찬가지다. 당초 우려와 달리 큰 혼란은 없어 보인다. 현장에선 이미 복수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정치투쟁,이념투쟁을 일삼던 민주노총 소속 강성 사업장에는 실용노선을 내선 온건 노조가 생겨나고 있고,어용노조로 인해 노노갈등을 빚고 있는 사업장엔 선명성을 내세운 민주노총 노조가 들어서고 있다. 복수노조가 오히려 노사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정치권의 노조법 재개정 움직임은 우리나라 노사관계를 후퇴시키고 노동현장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뿐이다.

윤기설 노동전문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