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에 흩어져 살던 바이킹은 8세기 중반부터 약탈을 개시했다. 아일랜드 수도원이나 영국 항구들을 습격했다. 파리의 여러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보호금과 몸값 등으로 3000㎏ 상당의 금은을 빼앗았다. 9세기에는 바이킹 대군이 잉글랜드 지역에 있던 4개의 앵글로색슨 왕국 중 3개를 정복한 뒤 빼앗은 토지를 동족에 나눠줬다. 이것이 바이킹의 첫 정주(定住)였다. 바이킹 고위층이 정주한 지역은 바이킹 이름인 'Grim'과 앵글로색슨어 접미사 'tun'을 합친 '그림슨'(Grimston)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로마 제국과 유럽의 탄생》은 번성한 로마 제국으로부터 미개한 유럽으로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 경로를 살펴보는 역사서다. 그리스도 탄생 전후 시기부터 1000년에 걸친 유럽사를 조망한다. 이로써 오늘날 유럽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지중해 중심 세계 질서가 재편성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답변을 준다.

1세기 역사가 타키투스가 동유럽 삼림지대를 '인간의 형상을 했으나 몸과 사지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서술했다. 1000년 뒤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크고 건실한 신흥국들이 자리를 잡았다. 기독교 문자 · 석재 · 건축물 등으로 대표되는 지중해 지역의 문화 체계도 북동부 유럽으로 이동했다. 게르만족 이주민은 로마제국을 무너뜨렸다. 그렇지만 유럽의 패권은 다시 게르만족에서 슬라브족으로 넘어갔다.

저자는 유럽의 1000년 역사를 '이주'와 '발전'이란 열쇠로 풀어간다. 그는 각종 데이터를 토대로 훈족 고트족 앵글로색슨족 슬라브족 바이킹 집단들의 면모와 이주의 형태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로마 주변에 살던 만족(바바리안)들은 유럽 내륙으로 점차 이주했다. 발전된 제국과 미개한 유럽 사이의 불균형이 근본 원인이었다. 유럽의 출현은 갑작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로마 제국과 만족 간 활발한 상호작용에 따른 점진적 과정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