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생활을 끝내고 홍콩으로 자리를 옮기는 돌아가는 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임원을 만난 적이 있다. 떠나는 그에게 한국에서 비지니스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게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웃자고 던진 질문에 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지정학적 리스크 때문에 예측불가능한(entropy)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나는 당연히 북한을 얘기하는 줄 알았지만 푸른 눈의 외국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말한 '지정학적 리스크'의 의미는 전혀 달랐다. 그가 한국인 동료들과 만들어 썼다는 그 말의 뜻은 이랬다. '지'는 한국인 특유의 지(地)연을 뜻하고 '정'은 정치와 정책, 그리고 '학'은 학(學)연, 이렇게 세가지 리스크를 말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 생활을 회고하며, 그 가운데 가장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던 건 한국의 정치였다고 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국회는 툭하면 문을 닫고, 정치논리 때문에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시기마저 놓치더라는 것이다. 본사에 정보보고를 할 때도 딱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때가 많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새로 온 후임자에게 한국에 투자할 때 주의해야 할 건, 북쪽에 있는 김정일이 아니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그와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가벼울 리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신문을 펼쳐보자. 정치권은 여론의 눈치를 보며 하루가 멀다하고 뒷감당도 못할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마저도 언제 뒤집을지 모를 일이다. 이제 정당들은 총선을 위해서라면 그동안 쌓아온 당의 정체성마저 내다버릴 기세다. 금배지를 4년 더 달고 싶을 뿐이다. 정책을 집행했던 관료들은 자리가 바뀌면 생각도 바뀐다. 몇년 전 자신이 입안했던 정책을 이제는 핏대를 올려가며 비판한다.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비지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웠던 MB정부가 이제는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그마저도 제대로 하는 건 없고 오히려 반기업 정서만 부추기고 있다. 갑자기 그동안 추진해 온 법인세 감세는 물 건너갔고, 내년 총선에서 표 좀 얻자고 어렵게 통과시킨 복수노조법은 다시 고치겠다고 한다. 문득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의 말이 떠오르는 오늘이다. "이제 한국은 여의도만 잘하면 다 잘하는 거라고..." 김민수기자 mskim@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