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은 후 100일 무렵부터 그녀는 젖먹이를 떼어 놓고 매일 시(市)와 도(道)의 경계를 넘나든다. 교외 한적한 강가의 백숙집이 그녀의 직장.하루 12시간 이상 홀에서 음식을 나르고 별채에선 매춘을 한다. '어서 오세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비참한 현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여성의 몸과 성을 매개로 현실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와 그들을 둘러싼 구조적 모순에 천착해 온 작가 김이설 씨(36 · 사진)가 두 번째 장편소설 《환영》(자음과모음 펴냄)을 출간했다. 간결하면서도 무미건조한 듯 폐부를 찌르는 문체가 등장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극대화해 보여준다.

집안을 풍비박산낸 동생 민영 때문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지게 된 30대 초반의 윤영은 고시원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던 남편을 만나 덜컥 임신한 채 같이 산다. 남편에게 희망을 건 윤영은 생계전선에 뛰어들어 왕백숙집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매달리는 친정식구들과 점점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아이를 위해 지쳐가고 급기야 매춘으로 내몰린다. 남편은 매번 시험에 떨어지지만 수험서는 며칠째 같은 페이지만 펼쳐져 있는 날이 잦아진다.

김씨는 "자신이 선택한 삶이지만 자유로운 선택이 아닌 삶,죽어라 노력해도 사회 계급을 쉽게 넘어서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6년 등단한 그는 등단작 '열세 살'과 첫 장편 《나쁜 피》에서도 여성의 성과 가족 파탄 문제 등을 다뤘다.
"신문 등에서 본 사건을 이야깃감으로 사용해요. 환경과 타의에 의해 망가져가는 여자의 몸은 약자를 대변하는 상징이자 생명을 만들어내는 내재적 구조이기도 합니다. "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