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전염병은 세계 각국의 역사를 바꾼 전기가 되기도 했다. 중세 유럽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이나 아즈텍 제국의 원주민을 몰살시켜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이끈 '대역병',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확산에 따라 아시아 각국에서 창궐한 콜레라와 이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1346년 몽골군이 크림반도 카파를 공략하면서 병들어 죽은 시체를 도시 안에 던지면서 흑사병은 유럽 각국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산맥에서 기원한 흑사병은 중국 윈난 지역과 미얀마에서 창궐한 뒤 몽골군과 함께 중앙아시아 초원을 강타했고 이어 유럽을 휩쓸었다. 흑사병은 유럽대륙에서 1347년부터 1350년까지 4년 동안 전체 인구 수를 3분의 1 정도 줄였다. 이는 중세 장원제 경제 붕괴를 가져오고 교회 권위를 추락시켜 이후 자본주의 경제 탄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가 멕시코 아즈텍문명을 붕괴시키는 데에도 전염병이 큰 역할을 했다. 600명에 불과했던 스페인인들이 수십만명의 아즈텍인을 지배하게 된 배경에는 면역력이 약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서구인이 가져온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즈텍제국은 인구 90%가량이 전염병으로 몰살 당했다.

19세기에는 영국,프랑스 등 제국주의 세력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오지로 진출하면서 전 세계에서 콜레라가 대유행했다. 인도의 풍토병이었던 콜레라는 1817년 인도 전역으로 퍼졌고 곧 세계 각지로 확산됐다. 장티푸스와 이질 등도 제국주의 시절 세계화와 함께 기승을 부린 전염병이다. 이들 수인성 전염병의 유행은 유럽과 미국의 상하수도 시설을 개선하고,보건시스템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